– 빗속에서 꺼내는 다짐
비가 내린다.
회색 빗줄기 속에
마음도 함께 작아진다.
이럴 땐, 문득 그리운 얼굴이 떠오른다.
전반기의 삶은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항해였다.
도전과 쟁취,
그 뒤에 숨은 회한과 눈물,
돌이키면 서늘한 후회의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그 바다로 나설 젊음도,
모든 것을 쥐려는 용기도 없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요한 호수 위를
노 저으며 가는 길로 하고 싶다.
마음에 돌처럼 얹히는 모임과 단체는
하나씩 정리한다.
만나면 불편한 사람,
마주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관계는
슬그머니 놓아준다.
대신,
만나면 웃음이 번지는 사람,
간혹은 소주잔을 부딪치며
하찮은 농담에 배꼽 잡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이들과 산천을 누비며
하루를 가볍게 보내고 싶다.
느리게,
더 느리게,
천천히 걸으며
풍경 속에 스며들고 싶다.
홀가분하게,
때로는 바보처럼 웃어가며
그저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
나를 좋아하는 이,
내가 좋아하는 이와 함께
이 짧은 후반기의 항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비 내리는 오늘,
작은 꿈 하나
가만히 속삭인다.
부디… 이루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