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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랄맘 Nov 09. 2023

같은 베개를 타고서

 존 버닝햄 작가님의 < 알도 >라는 책을 아이 둘과 함께 읽었다. 같은 베개를 셋이서 베고는 나란히 누워 그림책을 읽는 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알라딘에서 언제 샀는지 모르겠는 이 책을 오늘에서야 만나다니.

“ 어? 이 책 지각대장 존 쓰신 분 책이네? “

“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다. 그치? ”

“ 자자. 제목은 알도야. ”



 매일 똑같이 양쪽 하나씩 누우면 될 것을 여기가 내 자리라며, 오늘도 형아를 밀어낸다. 먼저 자리 잡고 누운 형은 귀찮다는 듯 일어나 가짜로 주먹 한방 날리더니 엄마 배위를 타고 쪼르륵 이쪽으로 넘어온다.

 “ 자. 형아는 왼쪽, 관기는 오른쪽. 자자 이제 됐지? 읽는다~! “


  이야기는 단발머리 소녀의 혼잣말로 시작된다.

 “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 이렇게.

 작가님이 그린 소녀의 모습과 표정도 읽고 싶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 질지 미리 생각해 보는 괴테 어머니를 따라 하고 싶은데, 오른쪽에 누운 성격 급한 아이는 벌써 책장을 넘길 준비 중이다.

소녀는 놀 것도 많고, 가끔은 엄마랑 놀이터에도 가고, 외식도 하면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지만 또다시 혼자가 된다고 한다.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 알도 >가 있어서. 특별한 나만의 비밀 친구 <알도>가 있어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에도 알도는 찾아와 준다.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나 내게 찾아와 주는 알도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소녀 이야기이다.


“ 디 - 엔드 - ”

 눈을 살짝 감았다. 아이 둘과 같은 베개를 타고서 가수원 국민학교 1학년 5반 양호실 앞 복도에 서 있는 한 꼬마 소녀를 찾아갔다. 네모난 창문 너머로 양호 선생님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엄마랑 사이좋게 책을 보고 있는 우리 반 지영이가 보인다. 한 장의 그림일까 사진일까. 양호 선생님 딸은 참 좋겠다. 마흔이 넘어 그때를 떠올려보니 책 보다 엄마 무릎이 부러웠던 거구나. 그랬던 거구나.


 어느새 나의 턱 끝까지 자라 준 강기와 형아보다 더 커서 나무 꼭대기까지 크고 싶다는 아이를 데리고 오래 전 한 꼬마 소녀를 만나고 오니 마음이 짠해지고, 감았던 눈에 따뜻한 물이 고인다. 심심하고 외로웠지만 엄마 화장대가 피아노 건반 같아 즐거웠고, 유치원 대신 아이템플 한 장을 방바닥에 엎드려 풀고 칠하고 오릴 수 있어 다행이었던. 그게 전부인 줄 알고 묵묵히 자라온 꼬마 소녀가 아이 둘을 품에 두고 책을 함께 읽고 있다니. 꿈도 못 꾸었던 그림 같은 일들이 이젠 일상이 되었다.


아이들의 생각을 넓혀줄 수 있는 더 그럴듯한 질문도 하고 작가님의 의도와 그림이 주는 소소한 의미들을 내가 먼저 발견해서 근사하게 알려주고 싶지만 글과 그림을 이 이상 읽어낼 자신이 없다. 읽은 책을 이불 밖으로 빼면서 나도 모르게,


 “ 우리 강기, 관기에게 알도는 누구야? “ 했더니

 ” 엄마. “ 그런다.


그리고 내게도 알도가 생겼다.

내 생애 최고의 알도가 하나, 그리고 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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