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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수 Sep 05. 2023

엽기떡볶이

자잘한 것들이 신경을 거스를 때, 아주 매운 떡볶이를 처방합니다.

아 오늘은 엽떡 각이다.

퇴근 30분 전, 카톡을 하나 보냅니다. 

그러면 3분도 안되어 어머니께 답장이 옵니다.

또 누가 우리 딸 신경을 건드렸어!!


그런 날, 있잖아요. 직장에서 점심도 못 먹고 일할만큼 바쁜데, 팀장님이 중요하지 않은 자잘한 업무를 10분 내로 해오라고 던지던가. 분명 일주일 전에 내용 공유를 했는데 공유 안되어서 업무를 못했다는 동료의 말. 저는 식품회사를 다니니까, 갑자기 일주일 전 같이 먹을 땐 맛있다고 GO! 를 외치며 그에 따른 업무를 다 진행했는데, 부장님이 '야, 오늘 먹으니까 짜더라? 이걸 수정하면 될 거 같은데'라고 말하고 축지법을 쓰듯 갑자기 사라지던가. 이런 일들이 자잘하게 쌓이고 나면 그날 저녁은 엽기떡볶이가 처방약입니다.


퇴근 후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에서 힘겹게 팔을 빼내 배달앱을 켭니다. 검색 상위에 떠있는 엽기떡볶이를 클릭해, 도착 예상 시간을 확인해 미리 주문을 넣습니다.


아 오늘은 스트레스가 좀 심했는데, 아까 B가 퇴근 5분 전에 던진 일도 그렇고... 오늘은 보통맛 먹자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맵기를 조절하고, 치즈 추가는 필수입니다. 스트레스에 취해 매운 떡볶이만 빈속에 넣는다면, 내일의 내가 매우 고생할 것이 눈에 보이니까요.

배달 주문을 완료하고, 다시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어 콩나무 시루를 실은 지하철에 갇혀 집에 갑니다.


배달 문 앞에 두고 갑니다.

가장 설레는 문자를 받고 한걸음에 뛰어가니, 현관문에 오늘의 처방약이 도착했습니다. 식탁에 떡볶이를 올리고, 각자의 앞접시에 가득 담아 즐깁니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치즈는 떡볶이 떡에 돌돌 말아 한입, 오뎅도 소스에 듬뿍 찍어 한입,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비엔나소시지 한입, 한입마다 자잘하게 쌓였던 스트레스가 녹아내리고, 위장도 함께 녹아내립니다.

나 우유 한잔 마실 건데, 마실 사람?

번쩍 손을 들어 우유를 찾습니다. 오늘의 나를 위해선 지금도 쓰라린 이 위장과 혀를 보듬어줄 유제품이 필요합니다. 위장엔 우유가 좋지 않은 것을 잘 알지만, 일단 오늘 나의 혀는 지금 뜨겁고, 아프기에 시원한 우유 한잔을 더해줍니다. 내일의 내게 먼저 미안하다고 속으로 전해주고 떡볶이를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오늘은 또 누가 널 힘들게 했어?
아 오늘 팀장님도 갑자기 그러고 B도 퇴근 5분 전에 업무 던지더니 자기만 퇴근하고... 이러쿵저러쿵

떡볶이 한입, 우유 한입에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씩 꺼내 말하다 보면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어느새 웃고 떠들고 있는 날 발견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품고 있으면 몸도 마음도 병이 듭니다. 자잘한 스트레스가 쌓인 날 저녁, 매운 떡볶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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