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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종 Oct 18. 2023

석상

  자욱한 안개가 드리운 산길에 나 혼자 이렇게 걷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어떻게 인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하염없이 이 산길을 홀로 거닐고 있다. 한참을 걸었을까? 멀직히 뒤에서 조용히 나를 따라오던 영감이 있다는 걸 느꼈다. 기쁜 마음에 영감을 향해 다가가 “여기가 어딘교? 가도 가도 집도 안 보이고, 내가 우짜다가 여기 왔는지 도통 기억도 안 나고 미치것네요. 산에서 내려가는 길좀 가르쳐 주이소.”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영감이 안쓰러운 듯 “이제 이만큼 헤맸으면 됐다. 고생 그만하고 내캉 같이 가자.” “아니, 길 물었더만 길은 안갈켜주고 엄한 소리만 하네. 그라고 내가 영감과 어디를 간다는 말인교. 갈라면 혼자가 소.” 휙 돌아선 나는 조그마하게 난 길을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옆에 듬섬듬섬 나 있는 나무는 빛깔이 검은색인 게 생기가 없어 보이고 이노무 안개는 걷힐 줄도 모르고 자욱하게 내려앉아 나의 시야를 방해를 한다. 얼마나 헤매었을까. 조금 전 그 영감이 또 나타나 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그냥 나랑 가면 된다. 더 고생해 봐야 니만 손해다. 내만 따라오면 편하게 도착할 수 있다” 너무 지쳐있던 나는 “영감이 하도 같이 가자니까 함 가보입시다.” 

  이렇게 영감과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목적지로 걸어갔다. 영감에게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으로 앞만 향해 걸어가던 영감은 아주 큰 나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큰 나무에 영감 손이 스치자 문이하나 금세 나타난다. 너무 놀라 “이게 뭔교? 마술도 하요? 갑자기 나무에 문이 왜 나타나요?” “이제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래 있던 곳으로 가는 거다. 열어봐라.”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뻐 문을 열어보니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며 그 속에 와이프와 아이들이 한쪽 벽을 보며 울고 있다. 나는 울고 있는 가족들에게 다가가 “내 왔다. 뭔 일 있었나? 와 울고있노?” 계속 물어도 들리지가 않는 모양이다. 가족들이 보고 있는 곳을 쳐다보니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그 중앙에는 나의 사진이 올려져 있다. 그것을 보고 너무 놀라 서서히 닫히려던 나무문을 박차고 뛰쳐나와 온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뛰고 또 뛰다 보니 돌산이 나타났다. 또 여기는 어디인가? 멍하니 돌산을 바로 보고 있던 그때 아까 그 영감이 다시 나타나 커다란 돌을 가리키며 “정 나랑 가기 싫으면 이 돌을 깎아라.”며 망치를 하나 던져주고 사라진다. 다른 방법이 없다 생각한 나는 망치를 들고 몇 날 며칠을 그 자리에서 돌을 깎기 시작했다. 손에는 피멍이 들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도 집에 가야 된다는 생각으로 돌을 깎았다. 어느 정도 다 깎았다고 느끼고 돌을 쳐다보고 나는 너무 놀라 들고 있던 망치를 던져버렸다. 내가 그동안 깎은 돌이 내 모습을 한 석상이 되어 있었다. 망연자실해 털썩 주저앉아 울고 있는 나에게 영감이 또 나타나 이 석상을 저 산 위에 있는 돌산에 내다 버리면 집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또 사라졌다.

  있는 힘을 다해 석상을 둘러메고 돌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올라 가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이윽고 산 정상에 다다랐다.

  산 정상에는 돌로 만든 석상이 많이 있다. 근데 가만히 석상들을 보고 있으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사람. 즉 고인이 된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석상이었다. 나는 내가 깎은 내 석상을 거기에 내려놓고 산을 내려오려고 있는 힘껏 뛰었다. 그러다 미끄러져 어디론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한 참을 자다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누워있는 내 머리 위로 가족들의 얼굴이 보이고 와이프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만 읇조리고 옆에 큰딸은 내 손을 잡고 “아빠 괜찮아? 이제 정신이 들어? 코로나로 정신을 잃은 지 벌써 6개월이나 됐어. 이제 정신 차렸으니 됐어.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 연신 울고만 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꿈속의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꿈에서 보인 그 영감이 나의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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