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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두려움과 용기의 경계에서

절대로 겸손하기를

by 파피루스 Mar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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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도 지나치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탄 배는 해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동을 멈추었다. 해안선은 절벽과 절벽 사이를 높게 이어지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듯한 작은 모래사장을 숨기고 있었다. 절벽이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주는 덕분에, 그곳은 마치 자연이 만들어준 비밀스러운 피난처 같았다. 선박의 엔진이 멈추자 바다는 갑자기 깊은숨을 들이쉬는 듯 고요해졌다. 청록빛 물결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햇볕은 따가웠다. 가까운 곳에는 이미 한 척의 배가 정박해 있었고, 비키니 차림의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선장은 이곳이 한여름 성수기에는 수많은 배들로 가득 찰 정도로 인기 있는 장소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영을 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갑판 위의 박스를 뒤적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시칠리아의 바닷가에서 수영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얼마나 많은 검색을 했던가. 하지만 이런 일은 책상머리에 앉아 검색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몸으로 직접 부딪쳐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어디를 가고, 어디에서 먹고 잘 것인지는 사전에 결정할 수 있어도, 바닷물에 몸을 담글 수 있을지 여부는 오직 그 순간의 느낌에 달려 있다. 바다의 온도는 숫자로 표현될 수 있지만, 그것이 피부에 와닿는 감각은 각자의 몸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바닷가에서의 수영은 절대 보편적일 수 없다. 마치 여행의 모든 경험이 개별적인 사건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작은 배 위에 탈의실 따위는 없었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친구 서너 명은 벌써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들뜬 마음에 주저할 틈도 없이 나도 따라 뛰어들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바닷가 모래사장까지 헤엄쳐 가보자고 했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매일 밤마다 늦게까지 마신 와인 때문에 이미 체력이 바닥났다는 사실과, 아쿠아슈즈를 그대로 신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물을 머금은 신발은 무거웠고, 그것을 신고 수영하는 것은 마치 발목에 돌을 매단 것처럼, 누군가 온몸을 잡아당기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기진맥진한 몸으로 무리하게 힘껏 헤엄쳤으니 금세 숨이 가빠져왔다.

어느 순간 숨이 차올라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푸른빛 바다는 깊고도 깊었다. 해안선은 멀어 보였고, 체력은 급격히 소진되었다. 가슴이 쪼여 오고, 폐가 터질 듯했다.

"나 좀 도와줘!"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공포가 엄습했다. 이러다가 정말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먼저 도착한 친구가 나를 보고 외쳤다.

"몸에서 힘 빼! 천천히, 천천히!"

그의 말이 들렸지만, 이미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수영을 배운 지 20년이 넘었지만, 당황한 순간 기본적인 원리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친구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그렇다, 힘을 빼야 했다. 겁을 먹고 허우적댄다면 더 위험해질 뿐이었다.

나는 평영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일단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안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짧았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끝없는 바다 한가운데 혼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모래사장에 닿았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은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경험으로 깨달았다. 인간의 욕심이나 호기심 따위가 자연의 위력 앞에서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한 지. 그리고 또 하나, 혼자였다면 결코 이겨내지 못했을 순간에, 친구의 작은 외침이 나를 살렸다는 사실. 여행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풍경만큼이나, 그 순간 함께한 사람들의 존재가 더 깊이 기억되는 것. 나는 여전히 숨을 가다듬으며 푸른 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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