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에 쓰는 시> 성점아 시인
"어머니 하늘나라에 시쓰러 가셨습니다."
6월 9일, 어머니처럼 따르던 시인께서 우리가 만나기로 한 하루 전 날에 소천하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예기치 못한 소식에 끓어오르는 슬픔 삼키지 못하고 나는 아이처럼 통곡하며 울었다.
성점아 시인은 어디에서도 떳떳하고 바른 어른이었다. 한평생 한결같이 깔끔하고 당당한 여장부였다. 농부의 아내, 맏며느리, 삼 남매 홀어머니, 소상공인 사업가, 교회의 권사, 자원활동가, 시인.
내가 기억하는 은발에 짧고 단정한 머리, 지팡이 짚고서 온정 나누는 꼬부랑 할머니, 뒷모습에 더 뭉클했다. 95세까지 품어준 내 할머니와 너무도 닮은 선생님. 군더더기 없이 시원시원한 말씀까지, 첫눈에 반했다.
식사하다가 다 못 들고 남은 들깨 수제비, 삼계탕, 추어탕 등 드시던 국물과 건더기, 고기를 내게 덜어주었다. 처음에는 망설이고 고민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엄중한 때에, 먹어도 될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숟가락을 떠서 국물을 마셨다. 그렇게 우리는 식구가 되었다.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13 학번 문우들이 철원, 포천, 양평, 서울 전 지역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저마다 시인님과 얽힌 잊지못할 일화에 손수건 적시고 봉숭아빛 그리움 물들였다.
85세 시인, 한평생 나누고 비우며 욕심 없이 살아온 삶. 배움의 한을 풀어 78세 쓴 학사모, 찬란하게 인생 졸업하던 날 영정사진으로 하늘길 떠났다.
국민학교 때부터 이태백 꿈꾸는 해남 바닷가 문학소녀, 고희 할머니가 되어서야 가슴 깊숙히 새겨놓은 꿈 꺼내어 십수 년 시를 쓰고, 또 써왔다.
꼬부랑 고갯길에, 꼬부랑 언덕을 넘어, 꼬부랑 허리가 굽어 불편할지라도 쓰고픈 열망이 고통을 앞섰다
"돌아보면 서럽고 눈물난 가시밭길이었지만 그래도 모두 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시집 <84세에 쓰는 시>
시인님과 함께한 날들이 햇살처럼 따듯했고 정성스런 사랑에 행복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국문과 동기 시인들, 유가족들과 함께 <84세에 쓰는 시> 한 명씩 낭독하며 추모할 수 있어서, 시집을 남겨서 어찌나 고마운지요!
우리가 또다시 만나는 날, 시를 쓰고 기쁘게 낭독하고 싶습니다. 다정한 벗, 성점아 선생님 85년, 수고 많으셨어요. 숨이 다하는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