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라레솔도 20화

걷는 것이 너무나 좋아!

서울 도보순례 1코스

by 에밀리


2021년 12월, 정형외과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며 "저런, 발등이 쪼가리 쪼가리 부러졌네요" 말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통깁스를 한 달 넘게 하게 되었다. 성한 다리로만 지탱하려니 다친 다리는 근육이 빠져버려 얇아졌다. 그리고 온몸을 지탱하는, 다치지 않은 쪽에 무리가 되어서, 이후로 안 다친 왼쪽 무릎이 불편해졌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계단을 내려갈 때는 표나게 느껴진다. 다리 길이가 다른 것마냥 뒤뚱, 내리막 길이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2024년 10월 29일에 오른쪽 발목을 또 다쳤다. 대전문학관에서 사진 찍기 위해 뒷걸음질치다, 얕은 턱에 넘어졌다.


"인대 파열입니다. 깁스를 하시지요?" 의사의 권고에 머리가 혼미해지고 아득해졌다. 기억의 화면은 다치기 전으로, 멀쩡하게 온전했던 장면에 멈춘다. 이미 엎질러진 것을 어쩌랴!


"아이들이 줄줄이 시험이고, 성지순례 일정도 있어서 그럴 수 없어요" 나는 조심하겠다며 거듭 말했다. 당장 3일 후, 3주 후에도 성지 순례가 있다고 했더니 "성치 않은 몸으로 성지순례 가는 것, 하느님이 원치 않으실 거예요" 주치의가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3일 후에 떠나는 순례는 아쉽게도 패스하고, 나는 일주일 동안 집에서만 조심조심 지냈다. 가급적 다친 오른 다리를 안 쓰려했고 발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명례방 공동체 김범우 집터

다치고서 3주 지난 후 당일치기 도보순례, 장장 다섯 시간을 걷고 뛰며 빗속에 우의를 입고 따라다녔다. 부상으로 걸음이 느리고, 때로는 이동중에 발을 질질 끌고도 다녔다. 그래도 빗길에서 한 마음으로 걸으며 기도할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


청계천 수변을 걸으며 가을 정취 물들이다

청계천 수변의 싱그러운 자연 , 수문교 다리아래 고즈넉한 운치가 한 폭의 수채화였다. 빗속에 어둑해진 흥인지문 주변 파노라마, 그림처럼 무척 아름다웠다. 걸으면서 천천히 바라보고 느낄 수 있어서 감각이 깨어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낙산에서 바라본 흥인지문 주변

11월16일 오후 6시

비오는 날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는다.



그리고 다음날, 서프라이즈! 대박 사건!!!


푹 자고 일어난 아침, 발이 확연히 가벼워지고 걷기가 편안해졌다. 정형외과 주치의는 "운동 효과예요." 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하느님 은총이라며 확신하고 감사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서울도보 1코스 순례 단톡방에 제주도 성지순례 공지가 떴다. 오래 전부터 고대하던 제주 순례가 한갓진 2월이라 무척 반가웠다. 놀랍게도 서초문협 원고료가 그 시간대 입금되어서 흔쾌히 바로 신청할 수 있었다.


이제는 움직이지 않으면, 여기저기 갱년기 징후로 쑤시고 결리고 아프다. 몸살기로 빈번하게 핑그르 머리가 어지럽고 혓바늘이 돋고 목이 자주 붓는다.


요새는 부쩍이나 동절기에 증세가 도드라져 몸살을 달고 산다. 제주행은 3박 4일 일정이다. 오롯이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순례의 여정이길! 아직 한참 남았지만 생각만으로도 신난다.



회고글을 쓰면서


의식하지 않아도, 내 삶은 자연스럽게 오티움을 향하고 있었다. 다녀와서 깁스를 해야 될지라도 반드시 가고픈 여정, 함께하는 기도와 걷기명상의 가치를 크게 느끼게 되었다.


어느새 순간의 고통에 무디어지고,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2024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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