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틀비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촉매제. 바틀비 이야기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이 쓴 <필경사 바틀비> 속 '바틀비'는 "안 하는 것을 선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를 외친다. 그를 그렇게 만든 자는 자본가이자 가진 자인 변호사다.
현시대의 대표적인 바틀비는 '사춘기 아이들'이다. 청소년 무기력증은 과도한 경쟁 및 평가에서 오는 학업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그렇게 내 몬 부모의 욕심 때문이 아닐까?
최근 학교 선생님들도 교실 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아동학대, 정서학대 등 각종 악성 민원 때문이다.
'지금의 나'도 바틀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 나를 바틀비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그 생각의 끝에 '완벽주의자였던 나'가 있었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만 했던, 대신 안 된다는 걸 느끼는 순간 포기를 해버리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안 하는 것을 선택했다."
직장생활도 엉망, 육아도 엉망인 나날이 계속되자,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나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나를 아는 동료와 친구들은 회사는 그만 두지만 뭐가 됐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할 줄 알았나 보다. 그 예상을 깨고 나는 바틀비가 되었다.
힘들었던 육아와 회사생활의 병행으로 계속 쌓여온 수면부족 상태의 나는 먹고 자고 잠만 자는 생활을,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는 집이라는 동굴에서 은둔 생활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을 엄마로서, 부인으로서, 며느리로서만 최소한의 최소한만 행하며 '나'로서의 삶은 없는 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