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것을 선택하겠습니다
오늘의 촉매제. <니체와 걷다>
신입사원의 나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서 10년 후 퇴사와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나는 것을 꿈꾸었다. 오직 그것 하나만 생각했다. 싱글일 때는 그러했다.
현실은 어떨까?
바쁜 회사 생활을 하며 엄마만 찾아대며 우는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갖가지 이유로 퇴사를 결심했을 때의 나에게는 세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어떠한 체력도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았고, 그럴 여건도 아니었다. 나는 나 혼자만의 내가 아니었다.
"퇴사하면 뭐 하고 싶어요? 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싶어요." 당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꿈도 아니고, 세계 여행도 아닌 그저 잠이었다. 그 정도로 수면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러다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이상 징후도 나타났다. 이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그렇게 나의 꿈은 꿈으로만 남겨졌다. 대신 지칠 대로 지쳐있는 몸과 힘들 대로 힘들어하는 마음을 위해 그냥 무작정 쉬는 삶을 포상 휴가로 주기로 했다. 무슨 셈법이었는지 5년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을 살아봐도 되겠다고 나 혼자 생각했다. 열심히 살아온 과거 시간, 퇴직금 소진 속도,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간 등 이것저것 따져본 것 같다.
딱 5년만 쉬고 뭐가 됐든 무엇이든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강제적으로 2년이 추가되었다. 한시도 내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성격에다, 시간을 허투루 허비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시간을 쪼개서 항상 무언가를 배우고 또 배우고 하던 나였다. 7년이란 세월 동안 그런 내가 사라졌다. 엄마로서의 최소한의 최소한만 하며, 철저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살았다. 자연스레 생각, 고민이라는 것들과도 멀어졌다. 철학적 사고, 내면적 사고는 말해 뭐 하겠는가. 너무 오랜 시간의 동면이었던 걸까? 앤데믹이 오면서 사회에 다시 활기가 찾아와서였을까? 문득 AI도 학습과 분석만 하지 않고 스스로 사고라는 걸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데, 이러다 내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 둔지 8년 차. 이제서야 나에게도 앤데믹이 왔다.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명확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사람들과의 교류, 독서, 열정을 품기.
그래 책을 읽자. 항상 동경해 오던 것이 아닌가. 혼자서는 사고의 확장이 되지 않는다. 나가자. 사람을 만나자. 같이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자. 마침 아파트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책모임 멤버를 모집한다는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독서모임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도 매월 모집을 해왔을 텐데 관심 없이 지나쳤을 터다. 마음이 생기니 눈도 떠진다.
워밍업 없이 너무 빨리 달리면 위험하다. 한 달에 한 권이라 부담이 없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지만 그나마 같은 아파트 입주민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에 멋모를 편안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너무 오랫동안 갇혀서 지낸 탓에 해보지 않던 생소한 것을 시작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갈까 말까 할 수 있을까 없을까 많은 고민에 고민을 더한 끝에, "모든 '처음'은 위험하다. 그러나 어떻게든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는 니체의 말에 용기를 냈다. 하는 것을 선택했다.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통해서 깊은 사고를 연습하기 위해 닫혀있던 동굴의 문을 열였다.
명확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선택한 독서모임의 인연은 글쓰기수업으로도 이어졌다. 많이 읽다 보면 쓰기의 욕구가 생겨나나 보다. 정기적인 연례행사로도 책을 읽지 않던 나, 살아오면서 글을 써야 하는 필요성을 1도 느끼지 않았던 나는 그냥 그저 그들에게 동승했다. 책읽기 왕초보, 글쓰기 무경험자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정답이 있는 것만 풀어왔고,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해 생각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다. 갓 동굴 밖으로 나온 나에게 '너의 생각은 어떠냐'는 질문을 받으면 즉흥적인 답변이 어려웠다. 생각의 순발력이 현저히 낮은 상태인 것이다. 어렵지도 않은 질문에 왜 어리바리하게 답을 하는 걸까, 왜 제대로 표현을 못 하는 걸까라며 나의 못남에 대한 실망감으로 시작해서 몇 시간, 며칠에 걸쳐 생각하고 고민하고서야 나의 답을 찾아내고 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사고의 근육이 하나, 둘 생겨서 점차 답변 속도가 빨라지겠지. 독서모임과 글쓰기 나눔교실은 확실히 사고의 연습을 시켜주고 생각 근육이 되어주는 듯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을 모르는 듯 너무 확장되어 버린다. 그동안 쓰지 않아 굳어버린 뇌근육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 머리가 아프긴 하다. 몸도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쓰면 아파서 몸살이 오듯이. 느껴본 적 없는 생각 근육을 단련하는 고통에서 오는 불편함은, 편하던 나로 그냥 살면 안 될까? 이걸 계속해야 하나? 나에게 무슨 득이 있지? 계산기를 두들겨보게 한다. 그럴 수 있다. 갇혀서 먹고 자고 잠만 자던 7년의 시간이지 않았던가. 이제 첫 시작이다. 일단 밖으로 나왔으니 햇볕도 쬐어보고 비바람도 맞아보자. 행동하고 습관으로 만들면 생소함도 새로운 편안함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이렇게 새로운 나의 삶 찾기 프로젝트는 독서와 글쓰기를 선택하면서 출발했다. 다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니 내 안에 눌려있던 열정이 꿈틀거린다. 의미 없는 시간이란 없다. 개구리가 멀리 점프하기 위해 몸을 움츠리듯 나의 7년은 도약을 위한 움츠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백지상태이기에 더 많은 걸 받아들일 수 있고, 체력이 생겼기에 활동에의 두려움도 적어졌다. 힘찬 발길질과 함께 다시 나로 나아가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내온 세월 동안 바래진 나의 삶에 선을 다시 그리고, 색을 입히며 새로운 나를 마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