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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권을 줄 수 있는 용기

갈등의 원인과 해결 방법

by 로진

오늘날에도 흔히 발생하는 유목 부족들 간의 갈등이 성경(창세기 13장)에 나온다. 하란을 출발한 아브라함은 롯과 함께 가나안 지역에 도착하지만 기근으로 인하여 다시 이집트로 이동한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는데, 그동안 이미 가축들의 수가 많이 늘어나 아브라함과 롯의 목동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유목민들 사이에서 목초지는 생명과 같기 때문에 신선한 목초지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회의를 하여 서로의 구역을 정하고 목초지를 나누어 양 떼들을 끌고 가는데, 오늘날도 간혹 약속을 어기고 남의 영역에서 풀을 뜯게 하는 목동들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아브라함이 롯의 목동들 중 누군가는 그들 간의 약속을 깨뜨리고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했을 것이다. 물론 이미 이때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가축의 숫자가 엄청 불어나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큰 결단을 하게 된다. 서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서로 이동하자는 것인데, 그동안 조카를 돌보았던 삼촌으로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분리 독립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권을 조카에게 주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동은 유목민으로서 상당히 위험한 처사이다. 자칫 자신의 부족 전체를 생존 위기에까지 빠뜨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목민에게 있어서 목초지는 생명보다 중요한데, 어떤 목초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부족 전체의 존폐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선택한 목초지에 가축들이 먹을 신선한 풀이 없다면 양 떼들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몰살하게 된다.


선택권을 받은 롯은 유목적인 환경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주 문명을 선택하였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아주 잘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롯이 신선한 풀들이 많은 목초지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데리고 정주 문명이 꽃피고 있던 소돔과 고모라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 롯은 그곳에서 유목이 아니라, 목축을 하였는데 좁은 목초지로 인하여 그곳 주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주 문명의 화려하고 달콤한 삶을 포기하지 못했고, 그러다가 정주 문명들 간의 전쟁에도 휩쓸려 죽을 고비도 넘겼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서 겨우 자신과 딸들의 목숨만 간신이 건졌다. 그의 아내는 정주 문명의 유혹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었다. 반면 아브라함은 광활한 목초지를 선택하였고 평화롭게 가축들의 수를 늘려 나가며 강성한 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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