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는 직빵
"지금 망하는 구간에 있거든."
라고 쿨하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라면...
어렸을 때부터 칭찬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것이 나에 대한 '인정'이라는 믿음 때문에 스스로 망했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게 좀 두렵다. 성공까지는 못가더라도 적어도 '포기' 혹은 '그래도 괜찮아', '망했다'라는 단어 자체가 상실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보니 나보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은 거다.
이들은 지금까지 어디에서 실력을 갈고 닦으며 숨은 고수처럼 있다가 내 앞에 등장한 걸까?
망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련스럽게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밖에는 없다. 최고를 향한 달음박질이라기보다 실망의 시간을 늦추어 보려는 심정이랄까...
성과도 없는데 이걸 왜 하나? 언제까지 해야 나도 ○○○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나도 △△△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겉보기엔 성실함으로 포장한 내면의 초조, 불안과 싸우면서.
그런데 '망함 구간 이론'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도약 직전에 발빠짐 모양의 망함 구간이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아래 그림처럼.
문보영 작가는 말한다.
나는 특히 책에서 말하는 '망함의 효과'가 있기 위한 조건을 오래도록 곱씹어 보았다. 미련스럽게 시간을 계속 끄는 것이 아니라, 망할 때 확실하게 망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망함의 기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실질적으로 망해야 하고, 열렬히 망해야 하며, 정말 망했다고 깜빡 속아 넘어가야" 한다.
아, 이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냉정하게 상황을 되짚어본다면 내가 망했다고 좌절한 때는 대부분 '느낌'으로 먼저 망한 경우이다.
나는 그 때까지 실질적으로 망하진 않았고 열렬히 망하지도 않았으니, 결과는 판명되지 않은 상태이고 최악이 아닐 가능성도 있는데 말이다.
'망함 구간 이론'을 알고보니 여기서 더 이상 망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또 망해도 문제없겠다는 호기로운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망함 구간 끝에는 반드시 도약의 문이 열려있으니까.
'발빠짐 모양의 망함 구간'이 '도약 구간'과 함께 나란히 있다는 사실은 초조, 불안과 격렬히 싸우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에서 조금은 편안하게 해 주었다. 전전긍긍하며 오로지 내 '열심'에만 매달려 지쳐가는 일도 줄었다.
망할 테면, 망해봐,
오히려 나는 열렬히 망하리라.
빨리 이 망함의 구간을 벗어나서 도약의 문을 열겠다는 희망의 의지도 본다.
아, 이제는 나도 쿨하게 "아, 지금 망하는 구간이거든"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감정에 의연해 지는 내가 좀 멋져 보인다.
♣ 북(Book) 노트
- <일기시대>, 문보영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