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밤
맨해튼의 밤은 지지 않는다.
그래서 서울과 참 닮아 있다.
뉴욕의 밤은 밝고 분주하며 화려하다
미드타운의 밤, 밤하늘 별만큼 밝게 빛나는 슈퍼마켓 앞을 지난다. '오니기리'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난 오니기리가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한참이나 오니기리를 찾았지만 냉장칸에 없었다. 그래서 가게 사장님에게 오니기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영어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한국어였다.
"아가씨 주먹밥이 다 떨어졌어요."
앗! 네? 한국말의 답변에 한국어로 한국인이냐는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
"난 한국사람이지. 서울" 할아버지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난 묻지도 안았지만 뉴욕의 서울 할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40년 전에 뉴욕에 와서 살았어요."
네? 난 할아버지의 옛날 옛적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그 시절 이야기!
"나도 서울에서 살다가 여기 와서 40년 동안 결혼도하고 아이들도 다 키우고 슈퍼도 운영했죠."
"그래도 1년에 한 번씩은 서울에 가요."
"서울 좋잖아~, 나는 영등포에서 태어난 사람이에요."
"그땐 참 영등포가 참 못 살았는데...."
“그땐 서울이 다 못 살았어요.”
나는 할아버지의 눈빛과 어눌해져 버린 한국말에서 그리움이란 걸 보았다.
나는 한국말로 건넨 정겨운 말들이 좋았다. 왠지 마음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한국인이란 사실만으로도 말이다. 복잡한 뉴욕의 사이렌 소리는 우리의 대화를 막지 못했다.
슈퍼도 40년 운영하신 거예요?
그렇지. 내가 1980년도에 뉴욕에 왔으니 벌써 44년이 이 넘는 동안 이곳에서 슈퍼를 운영한 거지.
"아가씨 오늘은 어디 갔다 왔어?"
"첼시요!"
"뉴욕 지하철은 참 더럽지?" "한국은 얼마나 지하철이 좋은지 몰라."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난 여기 40년 넘게 살아도 슈퍼 문을 닫은 적이 없어서 첼시에 한 번도 못 가봤네... 허허.."
부드러운 서울 말씨 “서울사투리 억양”이 들렸다.
슈퍼마켓을 40년이나 운영하느라 미드타운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는 말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으로 그 역할을 다하며 살아오신 게 눈에 보였다.
그저 슈퍼, 집 이게 생활의 전부였다고 말한다. 자식들 먹이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고... 낯선 뉴욕바닥에서 살아가려면 죽어라 일만 해야했다고 말씀하셨다.
낯선 타국땅, 그리고 40년의 세월, 할아버지 눈빛과 말투에서 그 시간들이 느껴졌다.
"한국이 이제 잘 살아서 너무 좋아."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가 떠날 때보다 훨씬 잘살아서 뿌듯해."
이제 한국이 으리으리하게 잘 산다는 말들....
할아버지의 어눌한 한국어, 눈빛 모든 게 한국을 그리워하는 듯 보였다. 할아버지는 한국어를 잊지 않았지만 발음이 어려워보였다. 1980년의 서울 사투리 억양을 간직한 뉴욕 할아버지
나는 뭐라도 구입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런 나에게 예쁘게 썬 망고한팩을 건네주셨다.
이건! 한국인 프리미엄!
왠지 감동적이고 마음이 툭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걸 받아도 될까?’
하지만 뉴욕 슈퍼 할아버지 사장님은 내가 기쁘게 받는걸 더 좋아하실 테야.
나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진짜 고맙다며 감사히 먹겠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철없이 그저 맛있게 먹는 게 더 마음이 좋으실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