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조연탐구
비현실적인 주인공 곁에는 현실성을 반영하는 조연들 이 있다. 모두가 주연에 집중할 때, 나는 색다른 시선으로 조연들을 바라본다. 영화든 소설이든 조연 캐릭터 터는 극을 이끌기도 극의 새로운 맛을 넣기도 하며 관 객을 긴장시킨다. 누군가는 기억도 못 할 그 조연, 나 는 조연에 집중한다.
파친코1 첫장, 첫문장을 잊을 수 없다.
파친코 소설, 그리고 애플TV+에서 양진을 연기한 정인지 배우를 보고 내내 감탄했다. 찰친 사투리와 어머니의 사랑과 딸에 대한 절박한 심정을 표현하는 정인지 배우의 연기력을 보고 너무 놀라웠다.
소설에서 선자 어머니가 선자 아버지에게 시집 온 배경이 담겨 있다.
소설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신붓감은 이 숲의 반대편에 우거진 숲 너머에 살고 있었다. 여자 아이의 아버지는 소작농이었는데 총독부가 근래 벌인 토리조사 사업으로 땅 주인이 뺏앗기는 바람에 그나마 짓던 농사마저 짓지 못하게 된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이 홀아비는 하필 딸만 줄줄이 넷을 뒀고 아들이 없었다. 숲에서 뜯어 온 나물이나 내다 팔 수 없는 생선, 혹은 비슷한 처지인 가난한 이웃들에게 가끔 얻은 양식 말고는 끼니를 때울 것이 없었다. 이 젊잖은 아버지는 딸들의 신랑감을 찾아달라고 중매쟁이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다 굶주리고 있는 마당이니 처녀들이 식량을 구걸하는 것 보다는 아무하고나 혼인하는 것이 나았다. 게다가 순결한 몸은 비샀다. 훈이의 신붓감인 양진은 딸 넷중 막내였다. 양진은 너무 어려서 불평할 줄 몰랐고 제일 적게 먹기 때문에 떠넘기기 가장 쉬웠다.
중매쟁이는 양진이 열다섯 살이고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순하고 여리다고 말했다.
-파친코1 p20
열다섯살의 가난한 집 네째딸 양진은 영도의 하숙집을 운영하는 언청이 훈이에게 시집을 온다. 아이 셋을 가졌었지만 모두 죽었다. 그리고 선자가 태어난다. 선자는 죽지 않고 살았다.
양진이라는 여성의 삶을 들여다 보며 1930년 여성의 삶을 생각해본다. 나에게는 할머니의 어머니 정도뻘의 분이시다 양진은 남편 훈이가 죽어도 딸 선자를 홀로 키우는 37살의 과부이다. 딸이 하나지만 그 딸에게 단호하면서도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어머니였다.
양진은 선자의 어머니다. 선자의 단호함, 강함은 어머니에게 닮은 것이다. 선자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어머니 양진에 대한 분석은 필요하다. 선자가 앞으로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갈지 어머니를 통해 예상이 가능하다.
선자의 어머니와 그녀의 삶은 참 많이 닮아있다.
가난했고 생계를 위해 팔리듯 결혼했고 그 속에서 강인하게 자녀를 낳아 키워낸다. 선자 어머니의 강인함과 사랑은 선자가 일본에 시집을 가는 장면에서 더욱 옅볼 수 있다.
양진은 선자가 일본으로 시집 가기 전 꼭 우리 땅에서 난 쌀밥을 먹여주고 싶어한다. 쌀집 아저씨에게 인사드리고 사정을 말한 뒤 쌀을 받아 오는 장면은 눈물이 난다. 일본으로 가면 영영 볼 수 없는 딸을 위해 우리 쌀을 구해 밥을 짓는 어머니, 양진
파친코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영영 다시 못 돌아 올 수 있는 고국의 쌀밥의 맛, 그리고 어머니라는 따뜻한 단어는 선자에게 살아가는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저는 평소 한식을 즐겨 먹지 않아 어느덧 쌀밥에 대한 귀함을 모르며 산 세대입니다. 쌀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제한에 의해 한국인들에게는 판매가 금지 되었다고 합니다. 시집 가기 전날, 어머니가 어렵게 구한 그 흰쌀 밥을 못보고 고국을 떠난 선자를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마지막으로 딸의 밥을 짓는 어머니 양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어머니, 그리고 쌀밥,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상징하는 이 밥이라는 것은 양진이 선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요.
선자, 어머니 양진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인물일까요?
어려운 형편의 넷째딸로 태어나 언처이(훈이)집에 팔려오다 싶이 시집온 양진, 그리고 어렵게 키워낸 딸 선자,
자신 보다 딸과 남편을 챙기고 살아가던 우리 어머니의 모습을 간직한 인물,
생활력이 무척 강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이다. 자신의 가족을 잘 챙기며 때론, 단호하고 강하게 선자를 다독인다.
역사가, 시대가 아프게 해도 자신의 가정을 잘 지켜나가려 혼신을 다하는 인물이다.
한국의 어머니, 양진
열심히 땀흘려 돈을 벌고 오직 딸래미 선자를 위해 사는 인물,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려는 헌신적인 우리 시대 어머니 상을 보여준다. 사랑으로 키우는 아버지(훈이)보다는 조금 더 단호하고 강한 면이 있어 선자의 강인한 성격에 영향을 가장 크게 준 인물이다.
선자 같은 재일 한인 1세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오모니'다. 우리말 '어머니'의 일본어 가타카나 표기다. 일본어에도 어머니를 뜻하는 '오카아상'이란 단어가 있다. 하지만 재일 한인 사이에선 원어 발음을 살린 '오모니'가 더 많이 쓰인다. 그 의미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한인의 어머니로 국한되지 않는다. 모국어에 대한 애틋한 감정,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고민 등이 얽혀있다.
예부터 어머니는 민족을 상징하는 기호였다. 단순히 아이를 출산해서가 아니다. 아이가 법·문화적으로 사회 일원이 되기까지 양육도 맡는다. 집단의 생산자 겸 전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에서 종종 배제됐고,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파친코'는 이런 낡은 틀을 오모니를 앞세워 뒤집는다. 비운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복기한다. - 아시아 경제뉴스 슬레이트 참고함
선자는 일본에 가서 재일한인1세 오모니가 된다. 어머니가 아닌 오모니는 한국식 발음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일본에도 오카상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재일 한인에게는 오모니라는 단어가 훨씬 어울린다.
선자의 생활력과 강인함, 재일 교포1세 단호한 오모니로 성장하는 데에는 선자 어머니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아비를 밝힐 수 없는 아이를 임신한 선자를 외국(일본)으로 시집 보내는 결단력을 가진 어머니, 양진
그녀를 통해 파친코 소설의 우리 어머니, 여성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선자 어머니 양진을 통해 1930년대 어머니상과 파친코 소설의 전체적 흐름에서 어머니의 결단력이 주는 영향력을 생각해본다.
영화와 소설속 조연탐구하기는 그 어디에도 자료가 없어 순수 저의 생각을 적은 글임을 알려드려요.
-작가 한서율-
사진 정보제공 애플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