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율 Poem
빛이 번져 눈이 시린 조명아래
메이드 복장의 계집들이 하나 둘 몰려든다
곱게 분을 칠한 그녀들이 거짓 웃음으로 웃던 어느날
하라주쿠 살롱의 유리코가
출근하지 않았다
돈이라면 뭐든 하는 애가 일주일 동안 잠적한건 처음이다
'무슨일 있어?'
하라주쿠 한 조그만한 아파트
유리코는 물 조차 마시지 않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있다
응
유리코는 이불 사이 얼굴을 내밀고 말했다
'4억' 유리코는 4억이라 크게 외쳤다
"전세 사기 당했어."
여기 집주인이 날랐어 내 돈가지고
유리코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이불을 감고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출근 안하는 거야?
다들 걱정하잖아
나는 유리코를 바라보며
"언니, 4억 벌려면 도대체 섹스를 몇번 해야하는 거야?"
유리코는 더 크게 울부짖었다
"너 나 약올리니?"
이러려고 온거니?
당장 안꺼져?
유리코는 4억을 벌려면 몇번의 섹스를 해야하는지
계산기까지 두드리는 나를 쫒아내버렸다
이제 언니 어떡해
4억은 어쩌고
유리코는 그동안 4억을 모으느라 살롱에서 수많은 남자들을 접대한
생각에 눈물이 왁칵 쏟아졌다
4억, 유리코는 좀 전 여자애의 말에 화가 났지만
그녀의 분냄새 나는 배 아래
들락거린 남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더 괴로웠다
픽션의 창작물
©️한서율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