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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절대음감

Chapter Ⅱ 

   고등학교 2학년 진학 후에도 1학년과 다르지 않은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여전히 나는 친한 친구가 없었고,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될지, 어떻게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될지 너무 어색했고 낯설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끼리 무리 지어서 재미있게 노는 것이 부러웠고, 나도 그 무리와 함께 놀고 싶었다. 그런데, 여전히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하긴 싫어서 수학이나 영어 중에 모르는 걸 물어보는 것을 핑계 삼아 아이들에게 말을 조금씩 걸어봤다. 하지만, 문제를 물어보고 알려주는 것뿐이었고, 그 이상으로 관계가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친구들과 관계를 계선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2학기 초 9월의 어느 날 음악 수업 시간이었다. 그날은 여태까지 계셨던 음악선생님이 수업을 안 하시고, 새로운 음악선생님이 수업을 하셨다. 새로운 선생님과 음악 수업을 하던 중, 갑자기 선생님이 피아노 건반을 하나 치고는 방금 피아노 소리가 계이름으로 들린 사람이 있냐고 물으시길래 나는 계이름 "시"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나한테만 대답해 보라고 하시면서 피아노 건반을 마구잡이로 누르셨고, 나는 건반이 눌릴 때마다 바로 계이름을 대답했다. 선생님은 나한테 절대음감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음악을 전공해 보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중학생 때 잠시 생각했던 음악 전공에 대한 마음이 다시 불끈 솟아올랐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음악 선생님께 다시 찾아가서 음악 전공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중학생 때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왼 손이 불편해서 전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말하자, 선생님은 피아노 전공이 아닌 작곡 전공을 권유하셨다. 작곡 전공 또한 중학생 때 내가 생각해 봤지만 왼 손의 불편함이 발목을 잡았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내가 작곡 전공은 가능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원래 오르간 전공 대학 강사인데 우리 학교에 음악과 기간제 교사로 이번주 한 주 동안만 수업하러 잠시 온 거고, 작곡에 대한 기초 이론과 피아노를 나한테 개인 레슨 해 줄 수 있다고 먼저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본인이 나한테 입시 레슨을 해 주게 되면 시간당 얼마라고 내가 묻지도 않았던 레슨비까지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 선생님한테 영업을 당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그 기간제 선생님한테는 일단 고민해 보겠다고만 말씀드렸고, 들은 대로 그다음 주부터 음악과 기간제 선생님은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내가 음악을 전공해도 될까를 진지하게 고민한 후 부모님께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갑자기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는 말씀을 들으신 부모님께서는 당황스러워하셨고, 동시에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음악 전공으로 방향을 변경한 것에 대해서 걱정하셨다.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나는 거의 매일같이 부모님을 설득했다.

  

   나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부모님께서는 작곡 입시 레슨 선생님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셨다. 때마침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는 작은 피아노 교습소 원장선생님의 전공이 작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학원으로 엄마랑 같이 가게 되었다. 피아노 교습소 원장선생님께서는 당신이 작곡 입시 레슨을 받았던 작곡 입시 레슨 학원이 아직 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며 그 학원을 소개해 주셨다. 다음날 저녁 부모님과 나는 그 학원으로 갔다.

 

   학원 건물이 겉으로 보기에 많이 낡아 보여서 어린 마음에 실망도 하고 반신반의했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이 있었고, 각 연습실마다 피아노 연습 소리가 들려왔다. 작곡 학원의 원장선생님과 첫 면담을 하면서 부모님의 걱정 섞인 말씀이 오갔다. 작곡 선생님은 부모님과 이야기를 잠시 나눈 후 나의 음감과 피아노 연주, 그리고 나 혼자 작곡한 악보를 보시고는 내가 음감이 좋기 때문에 지금 시작해도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하시며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레슨비 금액을 말씀해 주셨는데, 금액을 듣고서 당시 우리 집 사정으로는 부담되는 금액이라 나는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 부모님께 죄송했지만, 아빠는 나한테 열심히 해 보라며 기꺼이 지원해 주시기로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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