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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야간 자율 학습 시간

Chapter Ⅱ 

   중학교 3년의 시간 동안 같은 학교 아이들 중 아무도 나를 때리지 않았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지도 않았다. 그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가 배정되었다. 나는 1 지망으로 쓴 학교로 가길 원했고, 다행히 1 지망으로 썼던 학교로 배정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와 친했던 친구들 중 아무도 나와 같은 학교로 배정되지 않았다. 나만 혼자 1 지망으로 쓴 학교로 배정되었고, 내 친구들은 2 지망으로 쓴 학교로 배정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배정받은 후부터 나는 다시 불안이 엄습해 왔다. '내가 배정받은 학교는 남녀공학 고등학교인데, 6학년때처럼 남자애들이 또 때리고 놀리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감과 공포감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중에서 내가 아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나와 같은 중학교를 다녔지만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 없는 애들과 다른 학교 애들이 섞여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다. 다시 나 혼자가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고, 나는 그 반에서 친한 친구는 없었지만,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도 없었다. 자연스레 초등학교 6학년때처럼 학교에서 나 혼자 생활하게 되면서 나의 생각은 점점 더 편협적이고 부정적으로 바뀌어져만 갔다.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나의 불편한 몸이 미치도록 싫어졌다.

 

   2학기가 시작되고서 부정적인 생각들은 더 나를 사로잡았고, 나의 몸 전체를 칭칭 둘러싸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부정적으로 느껴지면서 불편한 몸이 싫은 것에서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다. 더 이상 내가 살아야 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 순간부터 나의 머릿속에서는 죽음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저 삶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져 갔다. 길을 걷다가 무심결에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보며 '저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나의 깊은 내면으로 엄습해 왔다.

 

   그러다 9월 9일 금요일이 되었다. 저녁에 야간자율학습을 할 때 나는 옆자리에 있는 한테 커터칼이 있냐고 물었고, 칼을 빌렸다. 그 애는 그저 내가 무언가를 자르려고 칼을 빌리는 것이겠거니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런 의미에서 칼을 빌린 게 아니었다. 나는 빌린 칼의 칼날을 길게 내밀어서 왼쪽 손목 위에 갖다 대고는 부동자세로 있었다.


   그 자세로 가만히 있으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취학 전 재활 치료받았던 시간들, 초등학교 1학년때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나의 뒤에서 돌멩이를 던졌던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울면서 가다가 엄마가 보시면 속상할까 봐 집에 도착하기 전에 세수하고 들어갔던 시간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아이들이 매일 나한테 때리고 놀리면서 나를 벌레 보듯이 쳐다봤던 눈빛들...

내가 보내온 시간들 중에서 모든 부정적인 시간들이 물밀 듯이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점점 그 생각으로부터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칼을 들고 있던 오른손을 위로 올려서 나의 왼쪽 손목 대동맥으로 향하던 그때, 화장실에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던 우리 반 애가 나를 목격하고는 복도가 떠나갈 만큼 비명을 질렀다. 그 애는 두 손으로 본인의 얼굴을 감싸고 눈알이 빠질 만큼 눈을 크게 뜬 채로 놀라서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그 애의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놨다. 그리고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건가 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려서 몇 시간 동안 계속 울었다. 그렇게 1학년의 어느 하루가 흘러갔다. 그날 이후 나와 우리 반 애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과 같이 생활했지만, 내 마음속 한편에는 뭔가 모를 죄책감이라고 해야 될까...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라고 해야 될까... 한동안 정체 모를 감정에 휩싸일 때가 간혹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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