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각자의 제시간에 맞춰 흐른다.
한 시간 남짓 외곽으로 향하는 출근길은 집순이인 나에게 출근 전 마음 워밍업 시간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시골로 풍경이 바뀌고 출발할 땐 많았던 차들이 드문 드문 한적해지면 비로소 자연을 즐길 여유가 생긴다. 8월 중순이면 출근길 고속도로 IC 진출로변에 심어진 벚나무 중간중간 노란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초록잎과 노란 잎이 엇갈려 달린 모습은 누가 일부러 예뻐 보이라고 색칠해 놓은 것만 같다. 단풍나무의 가을단풍은 전 국민이 즐기는 아름다움이지만 개인적으로 벚나무 단풍을 참 좋아한다. 단풍(丹楓)의 한자 뜻으로 유추해 보면 단풍나무의 잎이 빨간색으로 물드는 것을 뜻하지만 벚나무의 잎이 노란색으로 물드는 것도 단풍으로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적절한 단어를 찾기 어려울 듯하다.
벚꽃은 벚나무의 꽃이고, 꽃이 지고 나면 열리는 열매는 버찌라고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해 줬건만 여전히 머릿속에서 연결되지 않는 모양이다. 4월에 벚꽃이 피고 꽃이 질 때면 잎이 바로 수북해지는 벚나무는 5월 말이면 이미 버찌가 익어 길거리에 떨어진다. 이미 큰 일을 치르고 한 해를 마무리 중인 벚나무에게 8월은 잎을 물들이고 빨리 잎을 떨구어 내년 봄꽃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일지 모르겠다.
9월에 접어들면 노란 단풍이 그 사이 내린 비로 듬성듬성 떨어지고 달려있는 노란 잎들은 살짝 붉은빛을 보이기 시작한다. 노란색으로 시작하여 자몽 속살 같은 진한 주황색으로 바뀌면 벚나무 잎은 우수수 떨어져 처량한 가지만 앙상해 보이지만 한 해를 또 순리대로 잘 보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벚나무보다 두 주 정도 차이를 두고 피는 복사나무의 꽃은 벚나무와는 다른 일 년의 시간을 지낸다. 복사꽃은 복사나무의 꽃이고 그 열매는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과일 복숭아다. 꽃은 이 주 정도 뒤에 피는데 열매는 보통 7~8월에 열리니 열매가 열리는 시기가 대략 두 달 정도 차이가 난다. 게다가 복사나무의 잎은 11월 초까지 단풍이 들지 않고 초록 색을 유지하며 가지에 달려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과실류 사과나무, 배나무, 자두나무도 비슷한 시기에 꽃을 피우지만 우직하게 각자의 시간에 맞추어 일 년을 마무리한다.
흔히 각자의 각기 다른 재능을 비교하지 말라는 비유로 동물을 예로 드는 경우가 많다. 헤엄을 잘 치는 오리와 뜀박질을 잘하는 토끼와 같이 우리는 각기 다른 재능을 타고났으며 이를 서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한다. 재능뿐만 아니라 시간도 그러하다. 서로 다른 식물의 한 해를 들여다보면 꽃 피고, 열매 맺고, 잎이 떨어지는 제 나름의 흐름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것을 보고 일찍 꽃을 피웠다고 늦게 꽃을 피웠다고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우리도 충실히 제 각자의 시간을 최선을 다해 채워나가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