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출장을 끝내고 지역 특산품 매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특산품 판매장이 비슷하긴 하지만 이번 방문 매장은 유난히 어디선가 본 듯한 물건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치 인사동의 여러 토속품 판매장을 들러도 똑같은 디자인의 비슷한 중국산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 느낌이었다. 서양허브로 만든 디퓨져, 비누, 차, 립밤 등 어느 관광지에서나 파는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손수건, 목기류, 액세서리까지 장년층이 선호할 것 같은 잘 팔릴 것 같은 물건들이 잡화점처럼 모여 있었다.
출장을 가면 늘 그 지역물건을 하나정도는 사 오는 편이라 매장을 둘러보던 중 매장 구석에 전시된 우려 마시는 건강차들을 발견했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대로 원산지도 제대로 적시되어 있었고, 박스에 인쇄된 제조사 주소도 그 지역에서 만든 것으로 표기되어 있어 모처럼 마음에 들었다. 감국차, 박하차, 목련차, 작두콩차 등 여러 종류가 구비되어 있어 어떤 것을 살지 고민하던 중 마가목차가 눈에 띄었다. 마가목!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게다가 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식물명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내심 물건을 빨리 고르지 않는다고 눈치를 주고 있던 매장 여사님께 "마가목이 뭔가요?"라고 물었다.
"마가목이 뭐긴 뭐야! 마가목은 그냥 마가목이지!"라며 이상한 걸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답하신다.
나한테 팔고 싶지 않으신가 보다. 성의 없는 응답에 기분은 상하지만 마음에 담아두면 뭐 하겠나 싶어 위험 부담이 있는 마가목은 빼고 감국차와 작두콩차를 집어 계산하고 나왔다.
그 퉁명스러운 대답을 잊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집에 와서도 내 질문이 그렇게 이상했었는지 그 상황을 끊임없이 곱씹고 있었다.
'마가목은 그냥 마가목이지!' 맴돌던 그 문장은 마치 성철스님의 말씀 같기도 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사님은 그 상황을 한 번도 되돌려 생각해보지 않으셨을 것이다. 어쩌면 이 상황은 마치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사물과 단어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에게는 설명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일상에서도 조리 있게 문장으로 완성하지 못하고 모호하고 짤막한 단어들만 줄줄이 늘어놓는 일이 왕왕 생기기도 하니까 말이다. 깻잎을 설명하려면 뭐라고 해야 하지? 부추는? 곤드레는? 고사리는? 여사님은 마가목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를 못 찾으셨던 것일까 아니면 나와 마찬가지로 마가목을 진정 모르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특이한 이름은 봄에 나는 새순이 말 이빨이 솟아나듯 힘차게 보인다고 하여 얻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아목(馬牙木)이라 불리다 마가목이 되었다고 하는데 선조들은 참 사소한 것 하나하나 관찰력이 좋았구나 싶다. 이름 없는 나무가 봄에 새 순을 돋아내는 것을 보고 말 이빨을 연상하다니! 나에게는 그렇게 마가목이란 단어가 마치 예전부터 친숙하게 알고 있던 것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인터넷에 마가목을 검색하면 식물에 대한 정보보다 약재로 판매하는 내용이 더 많다. 나만 빼고 다들 마가목을 잘 아는 것만 같아 어서 빨리 마가목이란 식물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고산지대에 자생하니 흔히 볼 수 없는 나무구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욕심이 쓸데없이 커져만 간다. 내가 언제부터 마가목을 알았다고! 단지 새로운 단어 하나, 그러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인데 속절없이 보고자 하는 욕심이 어디서 생겨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람 마음이 이렇다.
'모르면 몰랐지 알면서 어떻게 그래?'라는 말, 그만큼 사람 마음은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모두 호기심에 상자를 열어버린 판도라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왕 이렇게 커져버린 마음, 벌어진 일을 되돌리려 애쓰기보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용이 더 현명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고산지대에 사는 이름만 아는 식물을 만나보고픈 단순한 욕심이 나를 등산이라는 새로운 취미로 인도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생활에 불어오는 긍정적인 변화를 시도해 보는 인생을 살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