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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Apr 05. 2024

미워할 수 없는 남자

빵점 아빠, 백점 남편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는데 남편은 매일 밤 친구들과 축제를 벌였다. 아이는 내가 낳았는데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늦은 밤이면 술에 절어 들어왔다. 먼저 육아의 길을 걸어본 자들에 의하면 마지막 만찬을 즐겨야 한다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입에 가시에 돋아나는 사람처럼 매일 마시며 그들만의 잔치를 즐겼다. 산후조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남편의 마지막 만찬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말에 집안일 뭐 하나 시키면 온갖 투정을 부리며 귀한 집 자식 행세를 했다. 집안일은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본 적도 없고, 하기도 싫고, 왜 해야 하냐고 그랬다.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누구는 해봤냐고, 내가 니 식모냐? 나도 귀한 집 자식이다.) 그럴 거면 평생 부모의 그늘 밑에서 살지 결혼은 왜 했는지 당최 알 수 없었다.


 남편은 업무 특성상 야근이 잦아서 평일에는 도통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남편은 시키지 않으면 할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할 줄 모르는 남편보다 능숙한 내가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 편했다. 남편은 쉬는 주말에도 목욕이나 수유는 고사하고 아기의 기저귀 한 번 갈아볼 일이 없었다.


 두 살 터울로 둘째가 태어났고 둘째 돌 무렵에 셋째가 뱃속에 들어섰다. 여전히 남편은 육아에 문외한이었다. 문득 남편과 육아에 분담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선한 추수의 어느 주말, 아이 목욕 분업이라는 제안을 했다. 그는 처음 집안일을 접했을 때처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던 사람이 해, 나는 그런 거 못해" (나도 처음이거든? 즐길 줄만 알고 책임도 못질 일을 왜 벌인 거니 이 자식아.) 뻔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들을 씻기는데 천불이 나고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머릿속에는 '이혼'이라는 단어만 맴돌았다. 그러나 눈앞에는 두 아이와 뱃속의 자라나는 생명이 있었다.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늘어져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쌓여왔던 설움을 쏟아냈다.


 다음 주말부터 남편은 첫째와 목욕했다. 아이는 눈이 따갑다며 울며불며 속을 태웠다. 말끔하게 씻고 나왔어야 하는 아이의 머리에 비누 거품이 묻어있는 날도 흔했고 겨드랑이 사이에 외출 복에서 묻어난 섬유도 그대로 있었다. 주말 남편이 하는 아이의 목욕은 못 미더웠다. 여기서 발 벗고 나선다면 우리의 육아에 도돌이표를 찍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답답해도 지켜봐야 했다.


  셋째를 낳고 집에서 산후조리를 할 때였다. 남편은 두 아이와 외출을 해보겠다며 야심 찬 포부를 내세웠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편은 아이와 나갈 때면 꼭 아이와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왔다. 대형 마트에서 아이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화를 참지 못해 아이에게 손지검을 하는 일도 잦았다. 아이들은 아빠와 외출을 하고 나면 기어코 영광의 상처를 만들어왔다.  







 솔직히 연애 초반부터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면 남편은 나에게 첫눈에 반했다. 남편은 처음부터 나를 공주 모시듯 극진히 대접했다.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물질적인 것으로 환심을 샀다. 주말이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내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당연히 계산은 남편 몫이었다. 기념일이면 명품 가방을 선물해 주고 연애한 지 일 년이 되었을 때는 국산 중형차도 선물했다. 그는 나에게 완전히 빠져있었다. 그런 남자가 결혼을 하자고 했다. 주변에서는 돈 많고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면 무조건 결혼하라고 했다.


 나를 좋아하는 것 빼고는 장점 하나 없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미운 날이 많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TV를 끊고 책을 읽었다.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과 패턴을 맞추려고 일찍 잤다. 목이 아파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어줬다. 여름에도 뜨거운 차를 즐겨마시던 내가 아이가 다칠까 봐 뜨거운 음료를 마시지 않았다.


 반면 남편은 아이를 낳기 전과 달라진 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그의 말 끝에는 비속어가 섞여 있었고 주말이면 늘어져 있기를 좋아한다.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아이들이 쫑알쫑알 얘기해도 듣지 못한다. 나는 변하지 않는 남편이 미웠는데 남편은 여전히 나를 변함없이 사랑했다.


 남편은 종종 묻는다. 다른 사람들도 결혼 생활이 이렇게 행복하냐고. 너를 만나서 너무 행복하고 너를 너무 사랑한다고. 몇 년 전까지는 듣고 흘렸던 얘기들이 귓가에 맴돌다가 이내 가슴을 파고든다. 육아에 지쳐 미웠던 남편은 그때도 지금도 내 옆에서 나만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제법 커서 육아에 한숨 돌리고 나니 한결같던 남편이 보였다.


 세 아이의 육아는 오롯이 나 혼자 해냈고 육아에 있어서 남편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언제나 내 옆에는 나만을 바라보는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내가 무얼 하든 내 편이었다. 건성으로 듣는 것 같아도 남편은 언제나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집안일을 그토록 싫어하던 남편이 주말 집 청소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쓰레기 좀 버리려고 하면 너는 그런 거 안 어울린다며 못하게 한다. 육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던 그가 주말이면 세 아이 육아를 자청한다. 너도 좀 쉬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 만나라고.


 10년 전에야 젊고 예뻤으니 나를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아이 셋을 낳고 보니 듬성듬성 보이는 흰머리에 얼굴에는 기미와 주근깨가 득시글하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몸무게는 복부에 모여서 빠질 기미가 없다. 가슴도 자존감도 많이 쳐져있는 나는 영락없는 아줌마다. 이런 나를 보고도 하루에도 몇 번씩 예쁘다고 칭찬해 주는 남편이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친정 엄마는 그런 사위를 보고는 입으로 사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는 천 마디의 말로 사람이었다. 부쩍 그런 남편이 밉지 않다. 혼자 하는 줄 알았던 육아였는데 남편도 (입으로) 동참하고 있었던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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