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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Apr 12. 2024

엄마 독립 프로젝트

육아 그 이후의 여자

 작은 사람을 본디 좋아하지 않던 나는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내 몸에서 탄생할 생명을 오롯이 안아줄 수 있을까 걱정했다. 자연 출산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선택이 아닌, 순전히 내 몸을 위한 선택이었다. 임신 내내 했던 걱정은 출산과 동시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작고 따뜻한 생명을 보는 순간 충만한 모성애로 가득 찼다. 아이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첫째를 위해 둘째를 낳았고 두 아이가 너무 예뻐서 셋째를 낳았다. 하루의 시계는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맞춰졌다. 하루 온종일 에너지가 넘치는 세 아이를 데리고 아이와 가볼 만한 곳을 찾아 헤맸다. 카페에 넋 놓고 앉아서 커피 맛을 음미하는 시간은 더 이상 사치였다. 아이들은 무조건 직접 만지고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곳을 좋아했다. 이왕이면 지붕이 없는 자연이 좋았다.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고 마음껏 뛰놀며 온몸의 양기를 불태우면 아이는 흡족해했다. 아이의 맑은 웃음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 불순한 찌꺼기들마저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혀 짧은 목소리로 '엄마'라고 부르는 그 음성을 듣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두 눈 가득 아이들을 담지만 아이들은 온 세상에 나를 담는다. 넘어져서 다친 상처에 항생제 연고보다 반창고보다 엄마의 따뜻한 품이 더 위로가 되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제 아무리 신나는 놀이터에서라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넘어져서 속상하고 친구와 싸워도 엄마가 기분이 좋으면 아이들도 평온했다. 아이들은 나의 행동뿐 아니라 감정까지 복사해서 그대로 느끼고 배웠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냉소적이었던 내가 털털하고 온화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나쁜 것은 무엇이든 버리려 했고 아이들에게 좋은 것은 무엇이든 내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침대 프레임, 거실의 TV, 나만의 공간, 흐트러짐 없는 집, 깨질 우려가 있는 장식장 그리고 내 시간 등을 버리고 버렸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놀이방 매트를 집안 곳곳에 설치하고, 좋아하던 재즈 대신 동요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던 내가 아이 친구 가족을 스스럼없이 집에 초대하고 모임을 주선했다. 아이들이 옷과 신발에 진흙을 마구 묻히며 놀아도 심심한 미소를 보이려 애썼다. 심플한 집안 대신 거실에는 그림책이 빼곡했고 아이들 방에는 발달에 좋은 교구와 장난감이 그득했다.


 평생 내 품에 아기일 것 같던 아이들이 어느덧 자라나 유치원과 학교에 다닌다. 육아 9년 만에 짧지만 강렬한 해방이 찾아온 것이다. 얼마 만에 내 시간인지 좋아해도 짧을 시간에 아이들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고 먼 훗날 내 품을 벗어날 아이들을 상상한다. 내가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던가. 돌아서면 돌아올 그 시간에 아이들이 보고 싶어 허덕이던 내 모습에 흠칫 놀라고 만다. 나를 비우고 비운만큼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내가 남아있지 않았다. 비운만큼 나를 채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양손 가득 빌려왔다. 마음이 흐르는 책들을 읽고 사색에 잠겨본다.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반려견 라떼와 오전 가득 걸어본다. 묵혀둔 요가복을 꺼내 입고 매트 위에 서서 흐릿한 시퀀스들을 되뇐다.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듣고 싶던 음악도 마음껏 들으며 나를 찾는다. 새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는 것에 놀란다. 마음 편히 책을 읽고 산책하는 것을 즐기는 나를 발견한다. 걷기 싫어서 가까운 거리도 차를 끌고 다니던 내가 9년 사이에 많이도 변했다. 책 한 줄 읽기 힘들어했던 내가 유일한 취미가 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신발장에는 빼곡했던 뾰족구두 대신 아이들과 뜀박질하기 좋은 굽 낮은 신발들만 남아있었다. 육아 그 이후의 나는 제법 괜찮은 어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래봤자 나를 에워싼 명사들은 아줌마, 경단녀, 가정주부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학창 시절 어른들이 입이 닳도록 하셨던 말씀에 공감을 한다. 다들 두꺼운 명함 한 장 갖고 있을 나이에, 나는 돌아갈 직장이 없는 능력 없는 가정주부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신세 한탄만 하기에 남은 인생은 길다. 한편으론 지금 이렇게 독서를 즐기고 열정적으로 삶을 가꾸는 모습이 어렸을 때 실컷 놀아봤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평일 오전 8시 50분이면 엄마는 집을 나간다. 아이들이 돌아올 정오까지는 고작 3시간 남짓이지만 분초를 다투며 열심이다. 매일 오전이면 엄마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잃어버린 내 이름을 찾는다. 평생 아이의 등만 바라보며 살지 않으리라. 어느새 커버린 아이가 엄마를 찾지 않을 때 공허한 삶이 밀려들지 않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본다. 조금 이른 엄마 독립을 해보는 것이다. 찾다 보면 나를 위한 삶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나도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나리라. 이왕이면 누구 엄마가 아닌 명사로 설명할 수 있는 명함을 갖게 되면 좋겠다. 오늘도 어딘가에 있을 내 이름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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