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변화를 크게 둘로 구분하면 정서적 변화와 육체적 변화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정서적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놀이공원 가는 게 귀찮다, 체면을 위해 거짓말도 불사한다,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신을 믿는다, 정대리가 왜 저럴까 궁금하다, 아내가 곰탕을 끓이면 무섭다 등 정서적 변화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하지만 정서적 변화는 ‘주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변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간혹 가다 아내에게 나약함을 들키기도 한다.) 반면 육체적 변화는 상대방도 아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가끔 친구들을 만날 때 "너 사회에 불만 있냐?" 같은 말을 들으면, '괜찮았던 내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라고 느낀다.
20대에서 30대 그리고 40대로 넘어오면서 체중은 늘고 근육량은 줄었다. 그리고 국물을 먹다가 지르르 흘리는 횟수가 잦아졌다. 한 마디로 말해 피지컬로 승부할 수 있는 나이가 빠르게 흘러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요즘 가장 신경 쓰이는 변화는 바로 흰머리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난 또래에 비해 흰머리가 없는 편이었다. 주변에 탈모로 고민하는 동료들이 흰머리까지 난다며 좌절할 때도 난 엄마가 물려준 우월한 유전자를 마음속으로 뿌듯하게 여겼다. 그러나 동료들의 저주가 하늘에 닿았는지, 불과 1년 사이에 엄청난 양의 흰머리가 돋아났다. 처음 왼쪽 귀 옆에 살짝 흰머리가 생겼을 때 만해도 ‘난 역시 좌뇌형 인간이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히려 아이들한테 족집게를 주고 건당 10원씩 쳐주는 노동착취를 강행했다. 5개 → 12개 → 23개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흰머리 채집량은 빠르게 늘었다. 어느새 내 흰머리가 착실하게 더블링 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만 하더라도 ‘아빠가 우리를 위해 이렇게 고생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던(?) 아이들도 어느새 흰머리 알바는 영 돈이 안 된다며 내 곁을 떠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TV를 보며 채널을 돌리는데, 마침 홈쇼핑에서 염색약을 판매하는 게 보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참 쉽죠? (feat. 밥 로스)”를 연발하며 스스로 염색약을 바르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전혀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연신 손을 움직일 때마다 이마에는 검은 줄이 생겼고, 쇼 호스트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어 갔다. 그 모습을 한참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왜 계속 보는 건데?”
완벽한 아내에게는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채소는 이미 써먹었고) 그중 하나가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타인의 범주에는 나도 포함된다. (님 or 남?) 내가 머리를 짧게 깎거나 새 옷을 꺼내 입어도, 아내는 잘 모른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삭발한 채 집으로 들어가도 형광등만 꺼 놓는다면 모르고 지나갈 것 같다. 그런 아내가 내 흰머리 고민을 알아주길 바라는 건 과한 기대였다. “요즘 흰머리가 너무 많아졌는데 염색을 해야 되나 싶어서” 내 말을 들은 아내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내 머릿속을 구석구석 들춰봤다. (이게 얼마만의 손길이야)
‘그래 아내 눈에는 흰머리도 멋져 보이겠지. 마치 조르지 클루니에 같지 않겠어? 염색하면 눈 나빠진다는데 그냥 둬야지.’라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흰머리 검사를 끝낸 아내가 말했다. “이제 보니까 할배랑 살고 있었네! 겉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흰머리가 왜 이렇게 많이 늘었어? 머리가 세면 얼굴도 같이 따라서 늙는다는 거 몰라? 빨리 염색하자.” 난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아내는 바로 어디선가 염색약을 꺼내와 솜씨 좋게 내 머리에 발라주었다. (염색약은 도대체 언제 산 건데?) 염색하고 머리 감는 시간까지 따져보니, 5년 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불과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인간이 태어나서 무조건적 사랑을 받는 시기는 길지 않다. 그 시기에는 무엇을 해도 쉽사리 용서가 되며, 어떠한 모습도 따뜻하게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허술하면 허술할수록 더 좋아한다.) 반면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누군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존재로 바뀐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가장은 부지런히 일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외모도 마찬가지다. 너무 과도하게 자원을 투입하는 건 곤란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스스로를 잘 가꾸는 사람을 만나면 무척 매력적으로 보인다.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걸 놓아버린(?) 파트너에게 매력을 느끼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다.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늙는 것과 관리를 포기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기대할 권리가 있다.
얼마 전 둘째와 둘째 친구를 영화관에서 데려온 적이 있다. 인어공주를 보고 오는 길이었는데, 둘째는 불만이 많았다. 운전하면서 가만히 들어보니, 본인이 생각하는 인어공주의 이미지가 아니라서 실망스럽다는 내용이었다. 내 기억 속 디즈니표 아리엘 이미지가 둘째의 머릿속에도 들어 있는 듯 보였다. 그런 둘째에게 드레드락 스타일에 까만 얼굴을 한 인어공주(이마엔 복점)는 다소 생뚱맞게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빈약한 스토리, 어설픈 연기력, 정교하지 않은 CG 등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주인공인 경우 당연히 흥행에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상한 대의명분을 앞세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길 강요하는 것보다, 최대한 아리엘의 이미지에 가까운 (관객의 기대에 부흥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돈을 지불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