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보이던 그녀가 사라졌다. 엄마도 아기도 보이지 않는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다.
"괜찮으세요? 손님, 손님 지금 손에 피가 나요. 이걸로 닦으세요."
수건을 건네받으며 일어나는 순간에도 출입문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지안이의 푸른 눈빛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녀가 서 있던 출입문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지안이 엄마와 지안이도 이런 마음으로 하염없이 출입문을 바라보았던 걸까? 나를 만나러 왔던 것인가? 마지막 인사를 하러 들렀던 걸까?'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몰랐다. 출입문이 열리고 형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비로소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차!'
형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각오하고 있던 순간이 다가왔다. 내 소식을 들었다면 깨진 유리잔이 문제가 아니다. 유리 테이블이 부서질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맞아 죽을 수도 있다. 명심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형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다시 살 길이다. 형과 눈이 마주쳤다.
"도중아! 도중아!"
형이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들어온다. 어릴 적 전쟁놀이를 하며 부상병을 구할 때보다 더 절박한 목소리다.
"도중아!"
'그런데 이 목소리는 뭘까?'
슬픔이 가득 차 있다. 내 소식을 들었다면 화와 분노가 가득해야 할 텐데, 뭔가 이상하다.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쿵쾅. 쿵쾅.
'혀~엉.'
두근. 두근.
퍼~엉
삐이이이이------
이 세상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 무인도를 가봐야 그곳도 결국 이 지구 안에 있을 뿐이다. 어떤 곳에도 내가 설 곳이 없다. 더 이상 소중한 이들을 파괴하고 싶지 않다. 여기까지 오게 돼서 모두에게 미안하다. 다들 나에게 그 많던 기회를 주었는데, 단 한 개도 잡지 못했다. 내가 다녀온 세상에는 희망이 없었다. 타락과 쾌락, 불신과 욕심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이제야 보인다. 그런데 너무 많이 왔다. 돌아갈 길도 방법도 모르겠다. 나는 내일 또 죽은 숨을 쉬며 살아야 한다. 늘 그렇듯 내일은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다. 이런 삶이 지친다. 쉬고 싶다. 또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오늘도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