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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결석 게임 8

싹이 트고 줄기가 뻗는 지점

by 이별난

'덜컹'


4문을 닫고 나왔다.


이 사건 2년 후,

동기 한 명을 만나러 학교를 갔었다.


처음 보는 후배가 말했다.

"아, 선배가 말하던 444 사건 주인공이 이 분이에요?"


종대형은 끝내 소문을 막지 못했다.

술학과를 만든 중심 세력들은 다 졸업했고,

학과 술문화도 많이 바뀐 듯했다.


아버지


사회의 술 문화도 바뀌었던 걸까?


IMF 외환위기가 있던 1997년,

그 해부터 유독 술냄새가 거리를 가득 채웠던 것 같다.


낮에 재래시장에서 간 적이 있다.

정장 차림의 아버님 홀로 와서

글라스에 소주 반 병씩 채워 원샷한다.

아무 말 없이 돼지국밥에 세 병을 비워내고,

계산하러 일어나다가 휘청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말없이 뒤돌아 가는 한 가장의 뒷모습이었다.


나는 그 아버님을 바라보면서

'저렇게 마시고 싶을까?' 했다.

술병을 들고 있던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사에 관심도 없었고, 내 안에 갇혀있었다.

이유가 있든, 없든 세상의 모든 술이 싫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보니,


사랑 한 번 아버지의 마음에 따라드리지 못했다.

그 싫었던 그의 술 냄새마저 그립다.


교차로

어머니


업무 시간인데,

공원 벤치에 정장차림의 남성들도 꽤 보였던 것 같다.

그 옆에 교차로 신문과 빈 술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항상 비어 있던 거리의 교차로 신문대.

저 중 몇 분은 직장을 잃었지만,

여느 때처럼 출근하며 집을 나왔을지 모른다.

신문 한 부 들고 공원으로 향하며,

교차로를 건넜을지 모른다.

생사의 기로에 선 많은 가정들은,

주머니의 돈이 떨어졌다.


'팍팍'했던 그날들.


형에게 비밀유지를 해주면서,

다 큰 놈 용돈을 구하시느라

고개를 숙이셨을지 모를 어머니가 그립다.


사랑을 어설프게 흉내 내면서,

너무 늦게 다가갔던 것이 후회된다.


생각의 교차로


난 이렇게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어른아이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도 그랬다.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생각의 교차로 한 부를 꺼낸다면,

지면엔 이런 글들만 가득 차있었을 것이다.


'이제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내가 왜 대학에 가려는 걸까? 대학이 뭔데?'


이런 교차로마다,

생각이 한 발 내딛는 곳은 언제나 같았다.


대학은 집을 떠나기 위해 가는 곳.

대학 선정 조건은 국공립의 타 지역.

학과 선정은 수능점수에 맞춘 곳.


그리고 결국, 그곳에 도착했다.


대학은 내게 인생의 중요한 지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난 이제 어느 길로 갈지 고민도 하지 않았다.

무조건 GO였다.


나고야에, 선동열 선수가 태양처럼 떠올라 꿈, 희망을 줄 때

난 나! GO야! 그 방어율을 깰 때까지 무조건 GO였다.


결국, 2학기 출석률 0%를 달성했다.

그런데 올 F 안주더라.

한 과목 D- 받았다고 실망하고 짜증을 냈다.


모두가 '팍팍'했을 그 시절


친형 대신 종대형이 '퍽퍽' 때려준 건 아니었는지 모른다.


분기점

싹이 트고 줄기가 뻗는 지점


최선의 결과에 집중해야 할 때가 있고,

최악을 면하는데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어쩌면 난,

선택의 기준으로 후자를 더 많이 적용해야 했다.


444 사건도 그랬다.

처음으로 분노를 밖으로 표출한 그날.


오랜 시간 누르고 있던 싹이 살짝 돋아난 게 지금은 보인다.


살다 보면, 분기점 같은 곳을 계속 만난다.

옳은 방향이든, 잘못된 방향이든 마찬가지다.

그곳마다 내가 취해야 할 것을 잘 챙겼어야 했다.


그러면,

도박을 해서 주변에 피해까지는 안 줄 수 있었을 텐데...


예기치 못한 일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내 삶이 부끄럽다.


가족이야말로

싹이 트고, 줄기가 뻗는 토양이었다.

그들의 뿌리가 날 감싸는 게 구속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덜 자란 채, 이 토양을 떠나면 시들기 마련이다.

이 토양 위에서,

내가 혼자 클 수 있는 힘을 최대한 키웠어야 했다.


안 그러면,

나중에 튼튼한 뿌리가 되기 어렵다.


휘청거리면 힘들고, 넘어지면 아프다.


삶의 문

나를 비출 푸른빛


크고 작던 많은 사건과 사고들


대한민국도 1997년은 큰 분기점 같던 한 해였다.


인터넷이 보급(PC방 등장)되던 그 해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성인이 되었다.


난 지금 또 어딘가 사이에 위치해 있다.

어디로 발을 내디디느냐에 따라

삶의 엔딩은 달라질 것이다.


다음 3(삶)의 문을 열고 나가야,

비로소 내가 만든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처럼.


보너스로 받은 구슬 파편을 꺼내 보았다.

지금은 빛나지 않지만,

엔딩에 푸른빛을 내며 나를 비출 것이다.


저 앞에 3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문을 여는 순간,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안 가면 알 수가 없다.


안 가면 이 영상을 볼 수가 없다.


난 알고 싶다.

그래서 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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