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열어야 하는 건데?
나만 이상한 건가? 내가 잘못한 건가?
막상 손은 들었는데, 불안하다.
눈을 감고 있으니 더하다.
'나만 들고 있는 거 아냐? 아니, 동기들도 다 손을 들고 있겠지?'
살짝 실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런데...
오 마이 갓.
망할 놈들.
.
.
.
"됐다. 눈 떠라. 97학번은 잠깐 나가 있어라."
다 나가자 종대 형은 문을 잠갔다.
'똑딱'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이외로 동기들은 차분해 보였다.
'내가 일을 이렇게 키운 건가?'
그때, 갑자기 문 안에서 소리가 났다.
'퍽. 퍼퍽. 퍼퍼퍽.'
96학번 형들이 맞고 있는 소리인 걸 직감했다. 난 술 강요와 폭력에 쌓인 분노가 터졌다.
부실 수 있을까?
나무 문 정도는 쉽게 부술 거라 예상했다. 난 문을 힘껏 걷어찼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이고?
젠장. 튕겨서 뒤로 밀려나 넘어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동기들이 옆에 서있는데, 얘네도 당황한 것 같다.
동기들은 웃음을 참는 것 같다. 아... 니... 한 놈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살짝 열린 입술사이로 미소가 바람 빠지는 듯 새어 나왔다. 분명히 '푸흡'이었다.
난 얼굴이 빨개졌다. 얘들이 날 일으키려는데 그게 더 싫었다. 제발, 좀 가만히 있어주면 안 되겠니?
난 동기들 손이 채 닿기 전에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나무문을 철문으로 둔갑시켰다. 또 했다가는 발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그땐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하는데, 동기들이 떡하니 보고 있어 숨을 수도 없다.
난 주먹을 꽉 쥐었다. 나무 문에 붙어있는 작은 유리창을 향해 오른손을 날렸다. 나도 유리쯤은 깨겠지?
'와장창'
깨진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후배 교육을 어떻게 하길래....... 아, 씨발 뭐야?"
96학번 둘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종대형과 눈이 마주쳤다.
두려움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그때 알았다.
문을 부수고 등장해 악당을 때려잡는 그림.
창문을 깨고 안쪽으로 손을 넣어 문을 여는 그림.
영화 속 액션장면들이 내 머릿속에 고정관념화 되어있었다는 걸.
운동조차 안 하던 나였고,
난 팔이 고무처럼 늘어나지도 않는다.
유리창이 높아서 안쪽 손잡이를 잡을 수가 없다.
난 뒤로 물러섰다. 심호흡을 했다.
'쾅'
그래 분명히 문이 조금이라도 뒤틀렸을 거다. 나무 갈라지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린 것 같은데. 그래, 문이 더 약해졌을 거야. 계속 걷어차면 열릴 거야.
다시 뒤로 물러났다. 난 문고리 부근을 발바닥으로 힘껏 밀쳤다.
'쾅'
난 튕겨서 뒤로 밀려났다. 동기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있는 힘을 더 짜내 기합을 넣었다.
"으아아아"
'쿵!' '쿵!' '쿵!'
문은 열리지 않는다.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
'얘들아. 말리지만 말고, 좀 같이 차주면 안 되겠니?'
속으로 되뇌며 계속 차는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난 분하지만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문 앞에 다가가 안을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후배 교육을 어떻게 하길래 하늘 같은 선배가 주는 술을 안 받아 처먹노? 나 때는 안 그랬다."
무력한 내 몸과 달리, 가슴속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숨이 막히고, 동시에 치밀어 오르는 화가 손끝까지 번진다. 종대형이 갑자기 일어나서 나를 보며 걸어온다.
'저벅, 저벅'
"저 봐라. 저게 뭐 하는 짓이고?"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똑딱, 끼익'
문을 살짝 열어주고 돌아갔다.
뭐지?
아무튼 문이 열렸다.
이제 들어가서 저 거구를 때려눕히면 된다.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난...
움직일 수 없었다.
겁...이...났...다.
"뭐 하노? 안 들어오고. 96학번 너네, 후배 교육 잘 시켜라. 자, 한 잔 더 받아라. 아휴. 그나저나 도중, 점마는 뭐 하는 놈이고. 저거 우리 과인 거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거 같던데?"
대놓고 오라니까 더 두려워서 앞으로 못 가겠다.
내 마음에 문이 있다면, 어떤 문을 열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문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열어야 하는 건데?
'철컹'ㅣ ㅣ'덜컹'
합리화, 위축, 겁먹음, 회피
그래. 이럴 때마다 난 숨고, 도망가는 것이 맞아.
그래, 그게 나다운 거야.
나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려 했다.
굴욕감, 창피함
그때, 동기들이 뒤에서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인식했다.
도망가고 싶어도 창피해서 뒤로도 못 가겠다.
체념, 망설임, 자책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고개 숙여 주먹에 박힌 유리조각과 빨간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대체 내가 뭐라고? 왜 사태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무엇 때문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역시 난 안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맞다.
자기혐오, 허무, 절망
그 옛날 집에서나 지금이나 다른 게 뭔데?
이런 순간들이 대체 언제까지 반복되는 건데?
유리창을 깨면, 이제 바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힘으로 나아갈 문은 절대 부서지지 않았다.
깨뜨려봐야 유리조각은 나에게 박혀 피만 났고,
결국, 바뀌지 않는 나만 바라볼 뿐이다.
욕망, 폐쇄감
두려움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구속받고 감금되는 느낌이 너무 싫다.
빠져나오고 싶어 헤매지만 문을 찾을 수가 없다.
이 과정이 매번 되풀이된다.
결국, 난 탈출할 수가 없는 건가?
분노와 해방의 착각
술과 폭력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그래도 밖으로 표출했던 첫날이었다.
난 또 이렇게 합리화를 한다.
외침
수많은 방에 갇혀 문을 걸어 잠그는 내 모습이 싫다.
난 그런 나에게 어떻게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어쩌면 지금 서있는 이곳이 내가 갇힌 방이고,
저 문이 나가는 문일지 모른다.
중력이 내 발을 강하게 잡아끈다.
그래도 가야 한다.
난 문을 밀며 들어갔다.
어쩌면, 난 자신에게 목놓아 소리를 치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
난 떨리는 목소리이지만 내질렀다.
"야 이 개새끼야... 먹이지 말라고!"
난 그대로 120kg에 육박하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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