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 게임 14_땀과 열
'꽁꽁'
"왜 나만 잡으려 하냐?"
"어, 얼음이 말을 하네? 너, 어는 도중이면 잡히는 건데? 아직 안 얼은 거야?"
"읍..."
"하하하"
자훈이가 술래면 도망칠 수가 없다. 아니, 도망치려고 달릴 생각도 안 하는 것 같다. 누가 육상부 에이스 아니랄까 봐. 매번 모든 얘들이 다 얼음 되는 게 순식간이다. 이건 뭐, 급속냉각이다. 지금도 딱 그 꼴이다.
'후훗'
놀이터에서 놀던 때가 생각나는데 미소가 지어졌다.
'흐음'
내 인생도 딱 그 꼴이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만의 '얼음, 땡'은 계속된 듯하다.
달릴 생각보다는 '얼음'을 외치고,
누가 '땡'해줄 때만 기다리고 있던 날이 많았다.
두려움, 죄책감, 자책, 포기... 등
인생의 많은 술래들이 나를 붙잡는 느낌이 들 때마다,
'얼음'이라고 외치긴 민망하니,
다르게 소리치며 제자리에 멈췄다.
"자훈아, 힘낸다고 당장 변하는 게 있냐고? 간다고 출구가 나와? 열심히 한다고 좋은 세상이 오냐고?"
"도중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건 네가 안 해서 그런 건데?"
"나도 알아. 아는데,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냐고? 그냥 좀 나를 내버려 둬."
"......"
'흐음'
자존심이 상해서 정확히 말 못 할 뿐,
나를 '땡'해주길 바라며 외치는 것 같아 보인다.
24시간 내내
누가 내게 손을 얹어 '땡' 해줄 수도 없고,
내가 있는 모든 곳에서 언제나
'땡'을 해주는 건 나밖에 없었는데,
그 소리를 못 들었던 것 역시 나였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내게 외치고 있다.
"도중아~!"
'후다닥'
"도중아, 튀어!"
"어, 어..."
자훈이가 얼음을 깨고 다닌다. 이런 자훈이와 같은 편이 돼서 술래를 피하는 날이면, 난 얼음만 잘 외치면 된다. 별로 달릴 일도 없다. 자훈이가 알아서 '땡' 해준다. 술래들이 애먹을 때이다. 기껏 얼려놓으면, 자훈이가 다 녹여버린다.
'흐음'
상황이 바뀌어도 나는 달릴 필요성을 못 느꼈다.
큰 버팀목이 있으면,
그들이 뒷수습을 다하니 안 달려도 되었다.
그때 놀이터에서도, 인생에서도
자훈이는
끝이 날 때까지 달려, 끝이 안나는 게임으로 만들고 있었고,
난
끝이 날 때까지 안 달려서, 끝이 나는 게임을 만들었었다.
지금도 과거의 많은 기억들에 붙잡히는 동안,
벌써 6라운드가 지나갔다.
여전히 제자리다. 예전이랑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어쩌면 생각, 마음은 특정위치에 있는 듯하다.
여기서 주저앉고만 있으면,
난 또 '얼음'만 외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지금 가진 생각마저 얼어버리기 전에 가야 한다.
일단 자리를 옮겨야 한다.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을 모르겠다.
지안이의 생명을 지켜낸 아내의 땀과 열,
자훈이가 달리던 모습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과연 난 삶을 얼지 않게 하려고,
땀과 열을 얼마나 내고 있는 걸까?
'뻘뻘, 화르륵'
저 문을 연다고 햇살이 나를 반길지,
또 다른 얼음에 갇힐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 몸에 흐르는 땀과 열만이
이 얼음을 녹일 가능성을 생기게 하고,
희망을 얼지 않게... 내 발을 얼지 않게 해서...
발자국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믿을 뿐이다.
7라운드에는 또 무엇이 나올까?
기억도 못하는 잘못은 또 얼마나 많을까?
'꽝꽝'
너무 차갑고, 무거워서 놓아버리고 싶은 것들.
오랜 세월 냉동보관하고 방치해서 '꽝꽝' 언 얼음덩어리들.
아무리 눈물로 씻어내도 녹기는커녕,
기억에 달라붙은 눈물까지 얼어붙어 더 무거워지고 있다.
그래도 이제 놓지 않는다.
무거우면 턱걸이 한 번 더해서 근력을 키우는 게 먼저다.
한 때, 듣기 싫고 이해하지 못했던 말.
소중한 이들이 진심으로 해준 이 말을
이제 내가 나에게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땡, 땡, 땡'
7라운드를 재개합니다. 1,728걸음입니다.
난 이번 라운드 9명의 술래들을 바라보며,
보폭을 맞춰 뒤로 걸었다.
출구 문 앞에서 술래를 끌어안았다.
제자리로 오고, 걷기를 반복했다.
달리기를 못하면, 걷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펑, 펑, 펑, 펑, 펑'
제자리라는 것.
이렇게 선택해서 온 적도 없던 것 같다.
땀이 멈추지 않는다.
이번 라운드 아홉 번째 마지막 술래가 나왔다.
자훈이다. 지금의 모습이다.
나 때문에 왼다리가 다쳐서, 더 이상 예전처럼 뛰지 못한다. 한 발로 '콩콩' 뛰면서 내게 오는데,
가슴이 미칠 듯 먹먹해졌다.
그런 나를 보며 그가 웃으며 말하는 것 같다.
"도중이 잡아라. 음... 너 잡기엔 한 발이면 충분해. 하하하."
당장이라도 그에게 잡혀, 그를 놓아주고 싶다.
그러나 그건 내가 이 죄책감을 벗어나고 싶어서라는 걸 안다. 사실은, 그냥 내가 보기 싫은 것뿐이다.
저 앞의 자훈이는 어쩌면 나의 양심이다.
이 양심을 이제 피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마주 보고 끝까지 걸었다.
"도중아~~ 나 괜찮으니까. 이제 좀 그만 '얼음' 외치고, 너 남은 삶, 너에게 남은 소중한 사람들 '땡' 해주러 가."
그렇게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난 그를 끌어안으러 달려갔다.
"미안해"
'펑, 펑'
나는 눈을 감고 벌러덩 누웠다.
이제 눈을 뜨는 순간 다음 라운드가 시작된다.
어느새 땀이 식으려고 한다.
이 열이 식기 전에 난 눈을 떴다.
8라운드를 재개합니다. 마지막 라운드입니다. 3,456걸음입니다. 술래가 한 번에 다 함께 나옵니다.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2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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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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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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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 뭐야? 다 같이 나와서 그런 건가?
'끼이익, 철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