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 게임 15_7, 8, 9
'끼이익, 철컹'
7라운드가 지나갔고, 8라운드가 시작됐다.
이제 안내방송대로라면 9명의 술래가 나올 것이다.
'지지직, 쿵, 뚜둑뚜둑, 뚝뚝, 치지징'
무언가 땅에 질질 끌리는 소리, 쇠 부딪히는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뼈마디가 꺾이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
나를 비추는 빛은 붉게 변했다. 마치 이번 라운드는 귀신의 집 분위기를 연출하려 한다.
어릴 때, 공포의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옆집에 살던 여소령에 대한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 무서워서 이불을 재빨리 뒤집어썼다.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날 토닥토닥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지금 들리고 있는 저 정체 모를 괴기한 소리들을
잠시나마 덮어 막아주고,
그녀의 손길이 닿아 눌리는 이불의 감촉은
날 잠시 포근하게 감싸준다.
그때 무서웠던 귀신도
따뜻한 추억이 되어 이 긴장감을 잠깐 풀어준다.
어머니의 자장가에 귀신도 같이 잠이 들었던 그날이
마치 일주일 전 이야기 같다.
지난 7일은 어제라는 이름으로 흘러갔고,
오늘인 8일은 지금 여기 머물며,
내일의 9일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어느새 벌써 8라운드까지 왔다. 난 지난 일곱 번의 라운드처럼, 그리고 여전히 이 어둠에 머물러 있다.
어쩌면, 난 지난 많은 날동안 어둠을 덮고 숨어서 잠들고 있었는지 모른다.
몇 장을 거둬내야 그 어둠이 걷힐까?
세어본 적도 없고, 때론 무언가에 꽂혀 어둠을 느끼지도 못하며, 또 얼마나 겹겹이 쌓여있는지도 모르겠다.
술래가 다가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모두 9명이다.
술래들의 머리 위에 붉은 글씨가 보이는데,
마치 피로 쓰인 것처럼 보인다.
[좌절] [자책] [후회] [두려움] [체념]
어제, 오늘, 내일... 끊임없이 내 안에 돌고 돌았던,
특정 기간에는 일주일 내내 밤낮 가리지 않고
내 곁에 있던 감정들이다.
이름만 봐도 축 처진다.
'후~우'
[죄책감]은 왼쪽 가슴이 뻥 뚫려있다.
[헛된 욕심]은 눈이 없다.
[열등감]은 손이 없다.
[트라우마]는 머리가 없다.
생김새를 보니 이건 공포체험 맞다.
털끝까지 쭈뼛 서는 듯하다.
'흐~음'
마주 보고 있어도, 사로잡히지만 않으면 된다.
지난 과거에 귀신에 씐 것처럼 날 뒤흔들었던 감정들이다.
앞으로도 계속 찾아와 나를 흔들 것이다.
섬긴 적도, 그러고 싶은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에 어김없이 나타나
나를 꼼짝 못 하게 하는 9개의 신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정말이지 저 다가오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다 귀신같아 보인다.
내게 붙어 안 떨어지는 아홉개의 구신처럼 보인다.
구신의 이동 방향이
어제로부터▶ 오늘을 지나▶ 내일로 향한다면 ▶
내가 느려서 이 감정들에 사로잡혔던 걸까?
◀내일의 새벽으로부터◀오늘의 낮을 지나◀어제의 밤을 돌고 돈다면
내가 길을 가다가 이 감정들과 마주친 걸까?
이 감정들이 끊임없이 내 안에 돌고 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외길 복도는 일직선으로 뻗어있다.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서있는 느낌이 들 법도 한데,
술래가 9개의 감정이라 생각하니,
상상 속에서는, 이 길이 끝없이 순환하는 8 자 트랙처럼 그려진다.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이 감정들과 적당한 7ㅓ리에서 함께 돌면 괜찮을까?
오늘을 그렇게 나아가면 내 팔(8)자가 바뀔까?
그러면 [내 9일]이 조금은 변할까?
삶의 어느 시기에 있는 나를 보면
7일, 일주일 내내 삶과 거리가 멀어지는데도
'결국, 어차피 8 자 트랙이라 또 만난다'라고 합리화하며 주저앉아 포기하고 있다.
소중한 이들은 나를 구(9)할 방법을 찾으며,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데,
정작 나는 자신을 포기할 확률을 9할 이상으로 넘기고 있다.
7-어제 걸었던 외길처럼 많은 감정들은 이미 지나갔다.
8-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감정들을 바라보며, 오늘을 열심히 돌다 보면,
9-내일은 많은 감정들과 같이 돌수도, 트랙을 빠져나갈 수도 있는 선택의 길을 만들 수 있다.
9가지 감정을 이렇게 마주할 수만 있다면...
어제 내디딘 그 한 걸음에 오늘 한 걸음을...
그렇게 오늘 두 걸음 나갈 이유를...
내 삶의 목표 중 하나로 삼기에 충분하다.
과거의 삶에 칠해진 무게가
끝없이 돌면서 내 삶을 짓눌러도
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을 구할 것이다.
어제 어떤 모습으로 걸었던, 그것도 내가 찍은 발자국이다.
설사 맘에 안 들었어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할 건, 그 한 걸음의 의미를 최대한 구해내야 한다.
"그래! 와라! 구신들아! 함께 가자!"
"계속 가자!"
[70화 함께_달리기 #한 걸음_어제]▶
[71화 함께_달리기 #두 걸음_오늘]▶▶
[72화 함께_달리기 #세 걸음_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