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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난 Oct 18. 2024

15화 어느 멋진 날에

끝없이 펼쳐진 푸르름이여

어느 멋진 날에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세요. 할 일 한 것뿐인데요."


"고마워, 언니."


"화장 번지니까 이따가 많이 울지 말고, 축하해."


아내를 많이 아끼는 언니는 웨딩샵을 운영하는데, 결혼 준비에 온 힘을 쏟아주었다. 그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져 따뜻하고 즐거웠던 과정이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웨딩샵을 나섰는데 이 언니 끝이 아니었다. 결혼식장까지 타고 갈 하얀색 리무진이 대기 중이었다.


"언니!"


"타고 가. 결혼 선물이야."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겉모습의 화려함에만 집중하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 한 사람을 위해 리무진 문을 열어주고 있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아내는 언니를 말없이 끌어안는데,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함께 타고 가는 이 짧은 10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0개월 전인데, 그땐 상상도 못 했던 순간이다.


10개월 전


부모님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당구 생각이 날까 봐,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는데, 다행히 우려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병원 로비에 누워 다짐했던 대로 일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내 생활이 점차 안정되어 갔다.


그것과 달리, 아버지의 투병 생활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어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옮겼고, 텅 비어 있던 집에는 어머니의 신발 향기가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힘겨운 세월을 걸어온 당신의 발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퇴근 후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익숙해져 갔다. 병원 근처에 있는 당구장을 지나칠 때면 예전 일이 기억났지만, 감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01 글로 세상이 열리다


어느 날, 온라인 카페에서 한 여자와 채팅을 하게 되었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반가움과 신기함이 교차했다. 주고받는 글 속에서 그녀에 대한 호감이 생겼고, 그녀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치 학창 시절, 다른 학교에 나랑 같은 학년, 반, 번호를 가진 이성과 주고받는 번팔처럼, 얼굴도 모른 채 글을 주고받는 것이 낭만적이었다.


그러다가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문자로만 소통했다. 연애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이 상태가 좋았다. 난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만 했었지, 모습은 누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게 휴가 때 깨달은 것이었다.


한 달쯤 지나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설레었지만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끊겼다. 그래도 이렇게 애매하게 피하는 건 아니다고 여겼고, 하루 종일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통화 가능한 시간을 확인한 후, 시간 맞춰서 전화를 걸었다. 그 후 더 자연스럽게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지만, 통화가 급격히 많아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글로 주고받는 것이 주였고, 얼굴도 모르는 그녀와의 새로운 형태의 인연에 묘한 설렘을 느꼈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며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했었을 것 같다.


'연애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행동은 연애하면서 말은 할 처지가 아니라고 하고? 뭘 어쩌라는 거야?'


어느 날 #02 문이 다시 열리다


어느 날, 병원에 이불을 가져다주던 날이었다.


"다음 일정이 빡빡해서 건네드리고 바로 나와야 해요. 엘리베이터 탈 때 전화드릴 테니까 앞에 나와 계세요."


문이 열리고 어머니께 이불을 바로 건네드리고 내려가려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려던 순간,


“잠시만요. 감사합니다.”


간호사가 타 내 뒤에 섰고, 10층을 함께 타고 내려갔다.


어느 날 #03 차단기가 열리다


어느 날, 그녀와 통화하며 아버지를 만나러 병원에 가고 있었다. 병원 입구에서 주차권을 뽑고 차단기가 열리는 소리에 그녀가 말했다.


“OO 병원이구나.”


“어? 어떻게 알았어?”


그녀가 종합병원에서 3교대로 일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디인지 말해주지 않았는데, 차단기 소리를 알 정도라면 이 병원에서 일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혹시 여기서 일해?”


“아니, 거기서 예전에 일했었는데 차단기 소리가 너무 익숙해서.”


"아하"


"그런데, 병원에는 뭔 일로? 문병?"


아버지의 상황에 대해 말해본 적이 없던 나는, 그녀에게 병원에 온 이유를 설명하며 처음으로 아버지의 암 투병 이야기를 했다.


"아, 그렇구나."


어느 날 #04 그녀의 눈에 정화된다


어느 날, 친구와 술 한 잔을 하던 중, 우리는 친구가 짝사랑하던 여자의 아버지가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는 용기를 내어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응급실로 가기로 결정했다. 난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함께 올라갔지만, 친구는 응급실 앞에서 발을 돌리며 말했다.


“난 오늘은 아닌 것 같아. 돌아갈게. 여기까지 왔는데 너나 연락하는 사람 만나봐.”


그녀는 마침 나이트 근무였고 몇 잔 마신 술은 용기를 나게 해 주었다. 전화를 했다. 그녀가 받았다. 나는 동료들이랑 먹으라고 바나나 우유와 군것질거리를 사서 병원 로비로 가서 기다렸다. 첫 만남인데 나는 술 때문에 얼굴과 눈이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드디어 그녀가 나타났다. 병원 가운을 입고 나오는 그녀의 모습에 술이 깨버렸다. 어제도, 한 달 전에도 만났던 간호사였다. 나는 그녀가 아버지 병동의 간호사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 소름 돋았다. 그녀는 차단기 소리를 듣던 날, 아버지 상황을 듣고 내가 누군지 알았었다고 한다. 이 날, 그녀도 닭살 돋았었다고 한다. 


심지어 말도 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잠시만요’라고 외치며 타서 내 뒤에 서 있었고, 아버지를 상태를 점검하고 나가면서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부르세요"하면 "네"라고 대답도 했었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서로 가벼운 목례를 했었었다. 나에게 그녀는 수많은 간호사 중 한 명이었고, 나도 그녀에게 근무하는 병동 환자의 아들일 뿐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통화를 하게 되었지만,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병동을 드나들며 스치며 지나치고 있었다. 환자의 보호자로, 환자의 간호사로 서로에게 인사도 했었다. 병원 밖에서 연락하는 사람이 이미 병원 안에서도 마주치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했다. 그녀와 눈을 오래 마주칠 일이 없어서 몰랐었는데, 잠시 얘기를 하면서 한참을 바라보니 흰자위에 실핏줄 하나 없는 약간 푸르스름한 눈은 마치 맑은 아이의 눈 같았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탐욕과 피곤에 뻘겋게 물든 나의 눈을 정화받는 느낌이었다. 이 날, 억제하던 내 마음이 활짝 열리고 며칠 후 교제를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두 달 후, 내가 교제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오랜 투병을 끝마쳤다. 그녀가 장례식에 찾아왔을 때,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 사람과 결혼할게요.”


이 여자다 싶은 느낌이 여러 번 들었지만 장례식장에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회상을 끝내고 처음 봤을 때처럼 아내의 눈을 바라보는데,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이 사람이 참 고맙다. 불안하던 내 삶의 안정을 찾아준 그녀가 있어 타게 된 리무진이 너무나 편안하다. 이 차는 그녀가 태워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다시는 못 탈 리무진을 내려 결혼식장으로 올라가니 반가운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다 제치고 내가 먼저 가 인사를 한 건 함께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난 쪼그려 앉아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고마워했다. 아이들, 그 어머님들, 원장님들을 바라보는데 지난 1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더 인사할 시간이 부족해서 미안했다. 시간이 흐르고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째깍, 째깍) 시간이 흐르고 준비하고 있는데 긴장된다.


"신랑 입장!"


오늘 사회를 맡아준 자훈이가 말한다. 


이 짧은 길을 건넌 후 다시 돌아오면, 나는 부부라는 이름과 신랑, 남편, 더 나아가 아빠라는 책임을 갖게 된다. 내가 그 막중한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나아가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째깍, 째깍) 결혼식은 이제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다. 


하객 인사를 하려고 돌아보는데 아버지의 빈자리에 앉아 있는 그 강해 보이던 형이 울고 있다. 나는 아버지가 눈을 감을 때도, 장례식장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형을 보니 이제 실감이 나는지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절을 하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웨딩홀이 떠나가라 외쳤다.


"감사합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을 할 수 있다. 그래, 지금부터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다... 그리고 아버지... 죄송합니다.'


감정이 터졌다. 이걸 모를 리 없는 자훈이다.


"신랑은 저와 4살 때부터 친구입니다. 신랑은 구슬치기를 할 때면 늘 저한테 깨지기 일쑤였습니다. 언제는 한 번 너무 열받았는지 제 구슬을 깨부수려고 힘껏 내리칠 때가 있었습니다. 자기감정이 깨진 줄 모르고 말이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이란 놈 터지면 주체할 수 없기는 매 한 가지 같습니다. 지금 감정이 많이 복받친 모습이 그때 같네요. 전 도중이의 감정을 다시 붙이는 방법을 어렸을 때 터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서 하기 힘드니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하객 여러분, 울보 신랑 힘내라고 큰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울지 마, 울지 마."


"도중아, 하늘에서 지금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실까? 깨어진 유리구슬은 다시 붙이기 힘들지만, 깨어진 정신은 다시 붙일 수 있어. (배에 힘을 꽉 주고) 도중아! 고생했다!"


자훈이의 진심이 담긴 마지막 외침에 고개 들어 그를 바라보니, 엄지 척을 들며 미소를 짓는데 그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네가 있어 너무 고맙다. 친구야.'


나도 엄지를 들어 올렸다.


"다음은 신랑이 많이 아낀다는 동생분의 축가가 있겠습니다. 참고로 노래가 가수 뺨친다고 합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나는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식이었다.


'뭐야 얘가 왜 여기서 나오는데'   


"도중이 형, 형수님,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김동규-]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다음은 신랑이 신부에게 바치는 시 낭송이 있겠습니다. 주의드립니다. 전 신랑을 아주 잘 압니다. 속이 거북하신 분들은 식당에서 김치 하나 빨리 드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


푸른 눈빛


글로 세상을 열어 그대의 세상을 만나니

우리 세상이 함께 열렸다


닫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듯

나의 마음이 다시 열렸다


올라가는 차단기를 억지로 내리려 해도

나의 감정이 차올라 그대에게 달렸다


아이를 닮은 그대의 눈을 바라보니

나의 눈이 정화되고, 나의 세상 안개가 걷혔다


당신이 펼쳐준 이 푸른 날

당신이 보여준 그 푸른 눈빛


이 고맙고 사랑스러운 푸르름에

끝없이 펼쳐진 세상 끝까지 


그대와 함께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째깍, 째깍) 소중한 시간이 흐르고

(찰칵, 찰칵) 소중한 순간을 포착하고

사진촬영까지 끝나며 그 해 10월 10일 결혼식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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