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토스트

by 온호 Mar 21. 2025

 생각났다. 유치원 선생님 이름. 아침에 역 앞에서 마주치고 이름을 떠올리려 할 때는 기억이 통 나질 않아서 포기했었는데 가볍게 다시 한번 떠올려보니 자연스럽게 올라왔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2번 출구에서 1번 출구로 회기역을 건너 나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려 할 때 선생님을 만났었다. 유치원에서 일하던 초반엔 내가 반감을 가졌던 선생님이셨는데 나중엔 선생님을 재평가하게 되면서 당시 내 생각도 재평가(반성)를 하게 되었다. 출구 앞에 있는 할머니 토스트에서 토스트를 주문하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절로 나오는 미소와 함께 시선을 보내고 있으니 그걸 느끼시고 내 쪽을 보셨다. 선생님도 "어!"하고 반갑게 웃으시면서 인사하시고는 "오랜만이에요, 토스트 하나 드실래요?"라고 물어봐주셨다. 밥 먹으러 가는 길이니 사양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흐린 아침 흐린 역 앞이었지만 마음은 밝았다. 배경 속 사람들이 무채색에서 채색으로 변하면서 내게로 튀어나오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스페이스21의 주랑을 지날 때 유독 이하와 이하 아버지도 자주 마주치는데 아는 척은 하지 않고 지나치지만 항상 그 부녀를 볼 때마다 등교하는 내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느낀다. 주민센터 앞에서, 중랑천에서, 그러니까 '동네'에서 주민으로서 유치원 꼬마들을 마주쳤을 때도 그랬다. 그런 일들이 내 삶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너무 재밌다. 마치 그것들이 '나도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 같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유치원 선생님을 마주쳤던 할머니 토스트에서는 그동안 토스트를 사 먹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 그래볼 생각도 한 적이 없다. '할머니 토스트'라는 이름이 있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런데 "토스트 하나 드실래요?"라던 선생님 목소리가 생각나서 지나가다 한번 먹어보게 되었다. 토스트를 부치고 있는 할머니 사장님과 두 분의 아주머니 손님이 한창 재밌는 대화를 하고 계셨다. 누구 한 명이 말을 잘못 옮기는 바람에 연을 끊니 마니 하는 그런 하소연을 하는 손님과 그걸 듣다가 세상에서 가장 적절한 대꾸를 해주시던 사장님. 그 세 분의 대화를 눈으로는 핸드폰 화면을 보며 들었다. 감정 같은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공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니 참 삶 같았다. 다들 살아있었다.


 내 앞에 오셨던 두 분에게 야채토스트를 접어 종이컵에 담아 건네주시고는 할머니는 "왕자님 소스는 어떻게 할까?" 하고 내게 물으셨다. '잘 못 들었나?'라는 생각과 이상하게 기분 좋은 느낌이 같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라는 존재를 대체로 좋아하니까 그런 손주대접 같은 것이 기분 좋았나 보다. 소스는 뭐가 있는지도 몰라서 다 넣어주신다는 말에 "예" 하고 말았다. 내 토스트가 마무리가 되어갈 때쯤 노점의 뒤편에서 어떤 아저씨가 펩시캔을 주워다 가게 창틀에 올려놓으셨다. 그러고는 "할망"하고 사장님을 불렀다. 사장님이 돌아보니 아저씨는 펩시캔을 톡 쳤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어디론가 가셨다. 청소를 하는 분이셨을까? 모르겠다. 어찌 됐건 그 두 분의 모습에서도 삶이 느껴졌다. 이 사람들은 여기에 강하게 속해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고 그게 굉장히 좋게 보였다.  

작가의 이전글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