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안 Feb 17. 2024

약 찾아 삼만리

약국 문을 열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누른다. 재빨리 의약품 주문창에 품절된 약이 혹시 입고되었는지 검색해 본 다. 역시 오늘도 허탕이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약사들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재고 0이라는 숫자가 큰 눈을 부릅뜨고 날 노려본다. 싸움에 진 패잔병이 되어 도매상 직원에게 전화를 한다.


모자란 약 입고 되면 꼭 잊지 말고 넣어달라는 부탁을 없는 애교를 부려가며 한다. 오늘도 없는 약이 처방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가슴이 답답해오며

심장병에 걸릴 지경이다. 근 이 년간 계속되는 약국아침 풍경이다.

약국을 경영한 지 거의 이십 년이 되어가지만 요즘같이 환자는 있는데 약이 없어서 돌려보내는 경우는 근래에 일어난 기이한 현상이다.



약국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시절부터였다. 갑작스러운 팬데믹에 약국이 공급처로 정해져 문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한 줄로 길게 줄 서기 시작했다. 전쟁 중도 아니고 식량배급이나 물부족도 아니고 마스크대란이라니.... 물자가 넘쳐나는 시대에 가장 원초적인 물품인 마스크를 배급해 주면서 오래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끝나고 그때 걸리지 않던 독감 바이러스에, 아직 잔존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수많은 바이러스로 무차별하게 공격당하자 독감, 폐렴으로 환자가 넘치게 되었다. 특히 소아과 옆에 자리한 우리 약국은 바이러스에 민감하다. 어린이 집에 다니는 유아들이 서로서로 옮아서 집에 바이러스를 옮기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 약국엔 기초약품인 진해제, 항히스타민제, 기치패치류, 해열제 시럽등 다양한 약품이  필요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유아들의 해열제인 타이레놀 시럽이 입고되지 않았다. 곧이어 맥시부펜 시럽도 들어오지 않고 코감기 치료 제인 코슈정도  다 품절대열에 합류했다. 장염에 걸린 아가 치료제 포리부틴 건조시럽도 몇 달째 품절 중이고 기침 패치는 제약회사에서 보내주는 소량으로 간신히 버티다 환자를 보내기 일쑤다.


암환자가 필요한 고가의 신약 부족도 아니고 전 국민이 가장 많이 쓰는 기초의약품이 왜 다 품절일까? 물론 절대적으로 바이러스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환자수를 의약품 수급량이 따라가지 못한 탓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공급량을 늘려야 하는 거 아닐까?


제약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감기약은 수가가 말도 안 되게 저렴하다. 생산라인은 정해져 있는데 경영에 유리한 돈이 되는 의약품 라인은 늘리고 감기약 라인은 줄이는 바람에 생산량이 부족하다고 한다. 정부정책으로 필수 의약품의 가격을 저렴하게 정해놓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제약회사도 이익단체인데 만들어봐야 적자만 되는 약품에 라인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니 회사에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해서 이런 감기대란에 약사나 환자나 몸이 아픈데 약이라도 편히 먹게 정책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상한 건 우리 약국에는 들어오지도 않는 약이 규모가 큰 약국에는 버젓이 공급해 준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약을 공급해 주는 도매상이나 제약회사에서 결제액이 큰 약국 위주로 약을 공급해 주는 바람에 매출규모가 작은 우리 약국은 필요한 약을 못 구해 아침마다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제약회사 직원과 신경전을 펴야 한다.


 아!!

 나도 이제 편히 약국 하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