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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Apr 06. 2024

경찰관이 찾아왔다.

  한가한 어느 오후, 약국 문이 열리며  경찰관이 불쑥 들어온다. 건장한 체격에 짙푸른 유니폼의 경관은 지은 죄도 없는 날 움츠리게 한다. 한 손에 잔뜩 들린 서류뭉치는 그가 고객으로 약국을 방문한 게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게 한다. 그는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명함 한 장과 작은 새니타이저 한 병을 꺼내 보인다.


   이 물건이 약국 게 맞나요?

 병 모양이 많이 낯익은 게 약국에서 개인적으로 쓰려고 집에서 가져온 새니타이저가 맞다.

   네, 파는 건 아니지만 약국에서 쓰려고 갖다 놓은 것이에요,  저 옆 선반 위에 있었는데....  어떻게 경관님이 갖고 계세요?

 얼떨결에 되돌릴 수 없는 정직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말투로 대답을 했다.

   안 ㅁㅁ 씨 아세요?

   그분이 여기서 훔쳤다고 하네요.

안ㅁㅁ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매일 아침 열 시 정도면 괘종시계의 시계추처럼 약국을 방문하던 그가 요 며칠 통 들르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서 너 달 전 그는 약을 받으러 온 환자로 약국에 처음 왔었다. 오십 정도의 중년으로 허름한 옷차림에 끊임없이 말을 함으로써, 그가 어려운 형편에 정신상태도 올바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약국 주위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지만 뒷길 어둑한 곳엔 그늘진 쪽방촌이 불우하게 늘어서 있다. 알코올에 찌들어 공원 앞에서 노숙하는 그들은 이 동네의 큰 골치 거리였다. 가끔은 근처 상점에서 난폭행위를 하는 노숙인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가 들르던 시점에 그를 많이 경계하기도 했다.


 그 후로 그는 거의 매일 약국에 들렀다. 길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오며 들르는 상점마다 높고 명랑한 목소리로 아침인사를 하고 다녔다. 마치 자신의 논밭을 다니며 소작농에게 농사일을 게으르지 않고 잘하기를 재촉하는 마름처럼.

  

  그는 상점마다 놔두는 할인쿠폰이며 전단지를 들고 와 나눠 주면서 약국 안 손님들에게도 말을 건넸다. 아이와 같이 온 젊은 엄마들은 그의 걸인 같은 외모에 깜짝 놀라며 나가기도 하고, 나도 점점 그가 빨리 나가 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본인이 예술 문화협회 회장이라는 헛소리도 하면서 아주 예의 바른 말투로 안부 인사를 하고 다녔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부터 작은 먹거리를 주고 가기 시작했다. 캔디 하나, 초콜릿 두 알, 주스 한 통 등 형편이 어려운 본인에게도 아쉬울 것 같은 물품들을 주고 갔다. 아저씨 드시라 해도 그는 강제적으로 약국 위 선반에 올려놓고 갔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약자인 그에게 먹거리를 받는 약사라니...  난 실소를 금치 못하며 그에게 받은 그 물건들을 한 편에 모아두었다.


 경관이 서류 한 장을 내밀며 내게 작성을 요청했다. 서류 제목은 피해자 진술서였다. 그깟 새니타이저 한 병 잃어버렸다고 피해자 진술서를 쓰라니...  

 

 난 피해 입은 것이 전혀 없어서 이 서류를 쓸 수 없다고 강력히 거절했다. 경관의 말로는 아래 편의점이나 독서실을 들르면서 그가 잔 물건들을 훔쳐가 자기들도 골치 아프니 이번 기회에 감방에 쳐 넣어야 한다면서 진술서를 쓸 것을 종용했다. 더구나 범인이  우리 약국에서 훔쳤다고 증언했고, 그 물건이 우리 약국물건이라는 것을 내가 시인했기에 진술서를 꼭 써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서슬 퍼런 압력에 못 이겨 진술서를 쓰고 말았다. 서류 아래쪽에 처벌은 원치 않는다는 의견서를 첨부했으나, 시뻘건 지장이 곳곳에 찍힌 서류 위에 조그맣게 쓴 내 글씨는 초라해 보였다.

 

 약국 구석에 쌓아둔 그가 준 물건들을 경관에게 내보이며 이 물건이 혹 그가 집어온 물건들인가 물었다. 신고한 피해자들에게 이 물건들을 돌려주면 어떨까 문의했으나 그는 별 관심도 없어하며 서류에 지장을 찍으라고 했다. 볼 일을 다 본 그가 나가자 그때서야 그가 준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용산 경찰서 강력계형사  김 ㅁㅁ

 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좀도둑을 잡으러 다니는 강력계 형사라니... 좀도둑 잡으러 다니는 동안 우리 구에선 더 무서운 범죄가 일어나진 않을까. 영화‘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이 잡범 잡으러 다니는 동안 동네 아가씨들이 연쇄 살인 당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가 돌아간 이후, 난 이상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분명히 그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낡고 허름한 옷차림에 쉬지 않고 내뱉는 말들. 과대망상증 환자 같은 허황된 말투, 그가 두고 가는 지저분한 광고지와 먹거리들...  


 하지만 다른 노숙자들과 달리 허황된 말속에는 예의 바름이 있었고 행동이 거칠거나 하지도 않으며, 만나는 모든 이에게 목청 높여 인사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좀도둑질을 해서 구치소에 있다니... 더구나 내가 쓴 피해자 진술서가 그의 처벌에 가중치를 더해주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섰다.

 장발장처럼 고가의 은촛대나 식기를 가져간 것도 아니고, 존재의 여부도 거의 모르던 새나타이 저 한 병 가져간 것 때문에 형을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하루 종일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죄를 지었다고 돌팔매질당하는 사람에게 나도 짱돌 하나 들어 힘껏 던진 그런 느낌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낯선 중년의 남자가 약을 지으면서 그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안 씨는 자기가 운영하는 교회에서 돌보던 사람이라 했다. 명문대학을 다니다 정신질환으로 학업을 끝내지 못하고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아 저리 지낸다고 했다. 발병이 되면 헛소리를 하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작은 물품들을 훔쳐 지금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감형되도록 처벌 불원서를 보내줄 것을 부탁하고 갔다.

 

 문득 정신적 지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난 나의 가족이 떠올랐다. 이제 거의 잊혀가던 마음속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아파왔다. 그가 구치소에 간 것이 왜 그리 마음이 불편했는지, 왜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이 좌불안석이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갔다.  

 

 물론 그가 도둑질을 한 것은 경관 말대로 죄이다. 남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가져갔으니 당연히 죄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정신 질환이 있기 때문이므로 처벌보다는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눈앞에 벌어진 그의 범죄 행위보다는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를 치료받게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의 사건을 맡은 판사가 겉으로 드러난 그의 죄보다는 그 원인을 파악해 현명한 판결을 내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한다.

 며칠 후 난 그를 담당하는 재판부로 합의서와 처벌 불원서를  보내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보낸 서류가 그가 받게 될 벌을 줄여주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는 소원을 담아 작성해 보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을 만큼 시간이 흘렀을 때 약국으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잘 지내시냐는 안부와 함께 보내준 서류 덕분에 잘 해결되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여전히 예술협회 회장이고 문인이라는 과대망상증이 글에 나타났으며, 영어와 한문을 섞어 갈겨쓴 그의 문체는 그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편지에선 그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고 예의 바른 밝은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예전의 내가 그들이 마냥 무섭고 두려워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았다면, 이런 일을 겪으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한 뼘의 따뜻한 마음을 보태게 되었다.


 약국 문을 힘껏 밀고 들어오는 건강하고 밝은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물론 또 조금은 성가시고 귀찮겠지만, 멀고 힘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인을 만난 듯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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