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라지는 것은 미련을 남긴다. 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뿐만 아니라 무생물에게도 애착과 미련을 떨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오래 끌고 다닌 낡은 자동차도 쉽게 처분하지 못한다. 내 손때가 묻기도 했지만 긴 세월 봉사한 차에 대한 나의 작은 의리다. 이러니 하루종일 나와 같이 공존하는 약들도 가끔 생명체로 느끼기도 한다. 어떤 약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약국을 지키는 것 같아 마을입구의 큰 은행나무를 보는 것 같이 든든하다. 의약품도 생로병사가 뚜렷해 사랑받고 장수하는 약이 있는가 하면 태어날 때는 모두의 찬사와 환호를 받았지만 금방 사라지는 약도 많다.
올초에는 근 삼십 년간 소염효소제의 대명사로 쓰이던 바리다제가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바리다제 (성분명; 스트렙토키나제 스트렙토도르라제)는 우리나라에서 뮤코라제, 세로나제등 여러 회사의 상품명으로 처방되었다. 주효능 효과는 기관지염, 편도선염 등에서 객담 용해효과와 안과진환, 수술 염증등 모든 처방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는 약이다. 통계에 의하면 일 년에 온 국민의 절반이 이 약을 처방 받아 먹었다고 한다.
문제는 식의약품 안정청이 2019년도에야 이 약의 재평가를 각 회사에 의뢰했고 이제야 퇴출명령을 내린 것이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이 약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인정되어 퇴출되었다고 한다. 긴 시간 동안 의사와 약사와 국민들의 신뢰를 받던 약이 하루아침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다니..... 마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씁쓸함이 한동안 마음속에 맴돌았다.
수년 전에도 단젠(성분명 ; 세라티오 펩티라제) 이 효능 효과가 없다는 같은 이유로 퇴출되었다. 인체에 아무 효과가 없는 약이 수십 년 동안 처방되어 보험재정을 갉아먹고 국민 건강에 아무 도움도 못주었다는데 왜 이 약들을 처리하면서 마음이 씁쓸할까. 아마 그동안 그 약들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배신당한 동시에 지금 쓰고 있는 이 약들도 효과가 확실할까? 하는 약사로서의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FDA 가 지금 처방되는 약물들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하며 또 다른 이유로 퇴출당한 약들을 알아보자.
1950년대 서독에서 의사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진정제, 수면제로 시판되었다. 특히 입덧 완화효과가 뛰어나 많은 임산부가 복용하였다. 이 약을 복용한 산모에게 사지가 없거나 짧은 신생아가 태어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났다. 신체적 기형뿐만 아니라 생존율도 낮고 그나마 살아남은 성인들도 한평생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서 1만 2천 명의 기형아가 태어나 현대의학 역사상 최악의 약해사건으로 기록된다.
성분명이 시사프라이드인 프레팔시드는 소화기관의 운동을 활성화해 소화를 돕는 새로운 기전의 약물이었다. 특히 소대장 운동을 활성화해 주는 유일한 약이었다. 1999년에 전문의약품 중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과용량 복용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정 문제가 제기됐다. 고용량을 복용한 환자들이 부작용을 일으켜 사망,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성분명이 라니티딘인 잔탁은 무려 40년간 병원과 약국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 애용되었다. 2013년 75미리 제재가 일반약으로 전환되면서 '속 쓰림에 탁 위장에 탁' '쓰리지 마 잔탁' 등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2019년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에서 발생원인이 확실하지 않은 불순물(NDMA)이 검출되자 식약처는 수입과 유통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 불순물이 발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시장에서 사라졌다.
1999년 2006년 까지는 당뇨병약으로 세계최고의 매출액을 기록했으나 2007년 심장발작, 뇌졸중 위험을 높이는 부작용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매출이 급격히 줄었다. FDA도 아반디아 이외의 다른 치료제 모두가 듣지 않는 당뇨병환자에 한해서만 처방할 수 있도록 사명을 엄격히 제한했다
하이드록시 클로르퀸은 말라리아 예방치료제와 류머티즘관절염, 루푸스 등의 치료제로 쓰인다.
프랑스의 감염병 학자인 디디에 라우 박사가 이약물과 다른 항생제의 조합으로 코로나 치료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코로나 치료제로 주목받았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약물을 ' 신의 선물' '게임 체인저'라고 칭하며 효과를 부풀리고, 복용을 권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약물이 치료엔 효과가 없고 부작용을 야기해 이 처방을 받은 환자 중 1만 7천 명이 사망했을 수 있다고 추정해 현재 의료계에서는 이 약을 코로나 치료에 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