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
2025년 11월 13일 수능일.
아는 거 다 맞고, 찍은 거 다 맞기를 기도할게!
수능 치르러 가는 딸을 보냈을, 그래서 먹먹하니 앉아서 온갖 복잡한 심정일, 친구에게 장문이 아닌 단문으로 응원의 톡을 전달했다. 무슨 말을 써야 하나 이리 썼다가 지우고, 저리 썼다가 지우기를 여러 번 하고 간신히 보낸 말이었다.
-고마워. 막상 들여보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려고 하네.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결과가 나올 일만 남았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친구와 친구의 아이를 응원했다.
수능 전에 엄마들은 당일날 하루 먹을 아이들의 도시락을 쌌다, 풀었다를 몇 번이고 연습한다. 그날 하루를 위해서 보온도시락 풀세트를 사다 놓는다. 내 아이의 미래에 너무나도 중요한 날이라, 덤덤한 표정으로 보내놓고도 마음에는 온갖 잡념과 상념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겠지. 아이만큼 덜덜 떨면서 시간을 보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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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낭랑 18세,
이제 11월이 지나면 예비 고삼이 아니라, 그냥 '고3'으로 불릴 딸아이는 오늘 방에서 11시가 넘도록 이불속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유달리 하얀 피부, 분홍색 입술. 너무도 예쁜 내 딸의 입술은 힘없이 헤 벌어져있다. 침 나오고 있냐...
아침 7시 반이면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학원을 다닌다. 토요일도 예외는 없다. 실컷 늘어지게 늦잠 잘 수 있는 휴일이 귀하다.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은 실컷 자게 둔다. 모처럼인데 둘이서 같이 밥 먹으러 나갈까, 하며 언제 즈음 일어날까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아점을 먹었다. 된장에 밥 말아 후루룩 먹고 나서 또 방문틈으로 살짝 쳐다보니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에 빛이 감돈다. 이제 일어나려나 보다.
점심으로 좋아하는 닭목살을 구워 상추와 함께 내어준다. 아이는 밥을, 나는 커피를 한 잔 내려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같이 할 수 없어 나누지 못했던 시간들을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긴 사춘기가 끝나감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엄마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모습이 다정하고 반갑다. 겨울이라 건조해서 거칠어진 얼굴을 만져보며, '우리 같이 팩이나 할까.' 시시껄렁한 말도 건네본다.
"엄마, 너무 좋아."
제법 큰 녀석이 뒤에서 나를 꽉 껴안는다. 좀 있으면 내가 힘에서 밀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사실은 영원히 비밀이다.) 나도 아이의 양팔을 꼭 잡아서 힘껏 내 품으로 끌어들인다.
"너, 카드 재발급받았어?"
얼마 전, 카드를 분실한 게 떠올라서, 물어본다.
"아, 맞다! 지금 찾아볼게!"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뒤지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나온다. 못 찾겠단다. '으이그'
저번에는 세탁물 주머니에서 발견했는데, 이번에는 영 가망이 없어 보인다. 재발급받으면 카드 안에 충전되어 있는 교통비도 사라진다. 그래도 별 수 없다. 재발급 신청을 하라고 하고, 그에 필요한 비용은 엄마가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지갑도 사줬는데 덜렁 카드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잃어버린 것 같아서, 지갑은 어쩌고 그렇게 덜러덩 넣고 다니냐 물었더니, 지갑이 너무 크단다.
그래서 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카드지갑을 쇼핑했다. 그랬더니 아이패드 케이스도 새로 사 달란다. 앉은자리에서 내 지갑을 탈탈 털린다. 그래도 쓸데없는 소비는 아니니, 기꺼이 털려주도록 한다. 물끄러미 화면을 보는 큰애 얼굴을 바라보니, 아직도 솜털이 보송, 보송하다.
'아직도 애다. 애. 카드나 잊어먹고. 내년에 어쩔라고. 얘를 내년에 어쩌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구친다.
아. 순간 깨달았다.
수능 날 아이를 보내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 한 기량을 펼치러 간 뒷모습에 눈물을 훔치는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이 녀석을 어쩌나. 이 어린아이를 어쩌나.
이렇게 애기인데, 큰 일을 치르는 너를 어쩌나.'
아. 이 마음이겠다.
나는 이 마음이겠구나.
이제 내 키만큼 커버린, 제법 아가씨 같은 얼굴의 아이를 다시 바라봤다.
아니다. 아가씨는 무슨. 그냥 얘는
안쓰러워서 가슴이 아려온다. 나는 아이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큰 애도 그걸 알아챘는지, 불편한 자세를 견디면서 조용히 안겨있다. 등을 쓰다듬는다. 한 참 위아래로 쓸어주다가, 머리도 쓰다듬어 본다.
"엄마가, 그날 너 맛있는 거 싸줄게. 너 먹고 싶은 게 뭐든지 다 싸줄게. 우리 아기... 안쓰러워서 어쩌니."
그렇게 한참을 서로 엉성하게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지갑과 아이패드 케이스를 주문했다.
그 사이 샤워를 하고 나온 큰애가 지나가면서 한 마디를 슥 흘린다.
"아--------- 나 이제 고3이네. 어떡하지------"
아휴, 그러게.
너 어떡하냐. 우리 애기 어떡하냐.
아는 것도 다 맞고, 찍은 것도 다 맞길 바란다.
그것이 수능시험이든, 인생이든.
네 앞길에 모든 일들이 다 그렇게 수월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간곡하게 기도를 드리는 오늘이다.
오늘 수능 치루는 아이들 모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 보내고 먹먹하신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실, 학부모님들 모두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