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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나는 고3 엄마

고3의 문 앞에서

by Wishbluee

2025년 11월 17일 오후 5시


어젯밤 12시 반까지 붙들고 있었지만, 결국 '그리스인 조르바'는 끝까지 읽지 못했다.

한 달에 두 번, 2주마다 한 번씩 참여하는 독서모임의 이번 주 책이었다.

주말 내도록 아이들과 보낸 탓이라고 변명을 해보며,

총 500여 페이지 중 고작 160여 페이지를 읽은 채로, 찝찝한 마음으로 모임에 갔다.



모임에는 올해 수능을 치른 아이 엄마도 있었다.

조르바 이야기에 앞서, 모두가 그 아이의 안부부터 물었다.


수능은 끝났으나, 결과는 아직이기에,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수능을 치른 그 엄마는 고맙게도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그 말들을 듣고 있자니, 그 아이와 엄마가 일 년 동안 얼마나 애썼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결국 30분 동안이나 입시이야기를 했다. 중고등엄마들이 대부분이니. 어쩔 수 없나.


입시 이야기를 서둘러 끝내고, 억지로 조르바가 꺼내졌다. 주인공이 동경하던 자유인 조르바. 입시 이야기 끝에 나누는 그의 시대와 발자취는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행동으로 보여준 그놈의 자유. 죽음을 기억하고 지금을 즐기자는 메멘토모리와 카르페디엠. 머릿속에 떠다니는 그의 기행 속에 숨겨진 자유의 메시지가 유달리 멀게만 느껴졌다.


시대와 세대를 건너,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의미는 무엇일까.


토론 중 누군가 말했다.

“내가 한 선택에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닐까요.”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그것들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시대는 전쟁도 없고, 질병도 자연재해도 일상적인 걱정거리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 평화의 시대에 아이들의 선택은 정작 아이들의 울타리 안에 없을까. 왜 이렇게까지 능력 밖의 것들을 감당하라고 하는 걸까.


어린 나이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몫의 두 세배를 해내면서, 미래까지 선택해야 하는 과제를 받았다. 모두가 똑같이 숙제를 한다. 앞날이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옆 자리 내 친구는 척척 다 해내는 것 같은데. 난 왜 이모양이지. 눈앞의 핸드폰 세상에 나를 맡겨본다. 현재의 고통이 잊혀진다. 아, 이게 카르페디엠일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이 힘든 여정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힘든 여정이라던데. 그만두고 싶다. 그만 두면 안될까? 시작도 전에 지쳐, 이만 쉬고 싶은데. 내가 어디까지 해 내야 하는 거지?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조르바가 살던 오래전 시대보다도, 지금의 아이들은 더 자유롭지 못한 영혼들이다.


아이들의 현재는 마치 위태로운 외줄을 타는 듯한 데,

기어이 끝까지 도착하라며 긴 막대기 하나만을 덜렁 쥐어 준다.


알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선택지를 주지 못한 부모들 또한 무기력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이놈의 입시판.

이제 정말 끝자락에 왔구나.


나는 이제 고3 엄마다.

내 딸은 이제 고3이고.


오늘도 뭘 해야 할지 몰라, 침대에 누워 핸드폰 속 세상을 유영하고 있는 네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기는 하는 걸까.


나도 핸드폰을 열어 어린 시절 아이의 사진에 푹 빠져든다.

진짜 이때가 좋았지.


모임이 끝나고 밥 먹고 차 마시는 동안에도, 입시 이야기는 끊이질 않는다.

나부터도 도망가지 말고, 마주해야 하는데.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이 마음을 어쩌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답답한 마음을 버리는 대신, 장바구니에 저녁거리를 잔뜩 채워 집으로 향한다.

무겁다. 뭘 이리도 많이 산 거지?


아니 무거운 건 내 마음이구나.


천근만근 발걸음을 애써 떼어 보는 오늘이었다.

어쨌든 나는... 엄마니까.


KakaoTalk_20251117_171805239_03.jpg 오늘따라 커피가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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