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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원짜리 백반정식

엄마도 오늘은 맛있는 것 좀 먹을게

by Wishbluee

2025년 11월 19일 오후 12시 반


둘째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 연수가 있었다.

가죽카드지갑 만들기였는데,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힘이 들었다.

손으로 죽죽 문지르면서 염색을 하고, 조그마한 구멍을 가죽끈으로 낑낑거리며 통과시켜 가며 간신히 완성을 했다. 다 만들고 나니 뿌듯하긴 했는데 오래간만에 애를 쓰고 집중을 했더니, 에너지를 엔간히 쓴 모양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진동을 했다.


같이 수업을 들은 동네동생과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학교 근처에 있는 백반집이었다.


그 집은 인기가 많아서 늘 가게문 앞에 차량들이 바글바글 주차되어 있다.

백반 한 상이 11,000원이니, 요즘 밥값에 비하면 너무나도 저렴한데 맛까지 좋으니 당연하다.

주차된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들어가 가게로 들어섰다.

서빙하는 분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마침 일어나는 손님들이 있어, 그 자리에 앉았다.

시끌벅적한 식당 안에서 우리는 뭘 먹나 메뉴판을 쳐다보며 말없이 고민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사실 나는 이 집에서는 늘 11,000짜리 백반정식만 먹었었다.

그래서 아마 저 친구도 그러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다.


"백반, 먹을까?"

"그래요. 언니"

"여기, 백반 두 개 주세요!"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동생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왜?"


동생은 내 등 뒤, 벽에 붙은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고개를 돌려 보았다.


메뉴판에서는 늘 백반정식만 보고 말았었는데, 세세히 살펴보니 이 가게에서 파는 음식들의 종류가 꽤나 다양했다. 여즉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음식들도 있었다.


'이 가게에서 이렇게 많은 음식을 팔고 있었나.'


11,000원짜리 백반 정식 아래, 아래 칸에

20,000원짜리 백반 정식이 있었다.

9천 원 더 비쌀 뿐인데, 구성은 훨씬 풍성해 보였다.


"언니, 우리 이만 원짜리 먹자."

"... 어?"


평소 먹던 가격에 조금만 더 보태졌을 뿐인데, 괜히 마른침이 삼켜졌다.

저렴하고 맛있어서 오던 식당인데. 한 번도 주문해 보지 못한 '비싼'메뉴를 고르는 기분.

마침내 결심을 하고 대답했다.


"그래! 우리 오늘 지갑 만드느라 애썼으니까 뭐!"

"아이, 언니 가끔은 우리한테도 돈 좀 쓰자~"

"그래! 맛있는 거 먹자. 맛있는 거."


그렇게 이만 원짜리 정식을 시켰다.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은 휘황 찬란했다.


"우와, 이게 뭐야? 나 이 집에 와서 이 반찬은 처음 먹어봐!"


꼬막을 메인으로 하는 식당인데, 늘 먹던 백반에는 꼬막 무침 하나만 달랑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먹는 정식에는 꼬막 초무침에, 꼬막 전, 그리고 간장게장, 매생이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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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솜씨는 역시나 기가 막혔고, 처음 먹어보던 반찬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아이들과 배달음식으로 치킨을 시키면 삼만 원이 훌쩍 넘는다. 피자를 시키면 한 판으로는 부족하니 사이드 메뉴까지 해서 오만 원 가까이 나온다. 네 식구가 외식으로 고기라도 구워 먹을라 치면, 냉동 삼겹살을 먹어도 십만 원은 나온다. 비싼 물가에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다 보면,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내가 먹고 싶은 것과,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엄마의 결정은 늘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평일 외식은 엄마에게는 어쩌면 작은 일탈과도 같다.

돈도 나누어 내니, 부담도 덜하다.

내 취향도 조금 주장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묘한 죄책감이 든다.

나만 맛있는 걸 먹는 듯한.


그래서 비싸고 맛있는 걸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오늘은 저렴한 백반대신, 조금은 '비싼' 백반을 골랐다.

나를 위한 이만 원짜리 점심식사는 어쩌면 사치스럽고, 어쩌면 소박하다.


눈을 살짝 감고, 맛을 음미한다.


꼬막 초무침은 새콤 달달 쫄깃한 게 너무나 상큼했고,

매생이국은 어쩜 이리 비린내 하나 없이 슴슴하니 간까지 완벽하며,

작은 게로 담은 간장게장은 짜지도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끝내주며.

꼬막 전은 보들 부들, 막걸리 한잔이 바로 생각나는 맛이었다.


행복은 상대적이라고 했었지.


매일매일 이만 원짜리 정식을 먹던 사람들은 이 기쁨을 모를 테지.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함박웃음을 짓게 하는 점심과 함께한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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