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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괜찮으시겠어요?

말없이 보여준 취향에 움직이는 마음.

by Wishbluee

2025년 11월 21일 11시


'도서관 모임'이 또 미루어졌다.

나와 친한 동생은 하루가 붕 떠버렸다.


"우리, 만나서 책이나 읽을까?"

"어, 그거 좋다."

"새로 생긴 북카페 가보자."


오늘 약속은 그렇게 성사되었다.


11시 카페 오픈시간에 맞춰서 도착.


"어라."


두툼해 보이는 문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양쪽 문을 다 밀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영업시간도 꼼꼼히 확인하고 출발했는데, 당황스러웠다.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 오늘 방역하고 있어서요. 십분 뒤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자상하고 부드러우면서 딱딱한 이 느낌 뭐지.


다행히 날씨가 많이 춥진 않았다. 동생과 차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대화의 주제는 사장님의 목소리였다. 미안하면서도 미안하지 않는 이중적인 느낌 아실랑가? 그렇게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조금은 건조한 느낌. 그렇지만 또 음성 끝에는 또 살짝, 배려가 서려있는 묘한.


십 분이 채 안 되는 시간, 전화가 울렸다.

사장님이다.


"이제 들어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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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와, 기대한 만큼 정말 너무 근사한 공간이었다.


사장님은 이제 막 들어오셔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계셨다.

말투와 표정은 전화기 너머와 다르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약간 차갑고,

그러나 불친절한 것은 아닌 그런 분위기.


음.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늑하고 따듯한 분위기와는 달리 이제 막 문을 연 실내는 차가웠다.


길고 높은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이 없어서, 둘이지만 조금 넓은 곳으로.

책 읽기 딱 좋은 자리였다. 책상 위에 자리한 옅은 빛의 등, 조도가 완벽했다.


앉아서 집중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주문한 커피와 케이크를 들고 오셨다.

그리고 보니, 그 흔한 진동벨이 없었네. 요즈음 카페는 진동벨을 주고 그게 울리면 스스로 가져다 먹는 셀프시스템이 보통인데.


여전히 표정은 무뚝뚝하지만, 조심스럽게 트레이를 내려놓는 손길에는 정성이 배어 있었다.

동생이 주문한 라떼는 이렇게 먹으면 맛있어요,라고 서툰 말투로 설명을 해주셨다.

조금 긴장을 하셨을까, 미세한 떨림에 커피잔 가득 채워진 아메리카노가 조금 넘쳐흘렀다.


따뜻한 커피잔을 양손으로 잡았다.

얼어붙을 듯이 차가웠던 손에 온기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커피 향과 수증기에 마음도 서서히 녹아서였을까.


예쁘게 꾸며놓은 실내가 다시 한번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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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말없이 바라보다가 슬쩍 일어나서 다시 한번 한 바퀴를 스윽 둘러본다.

다정하게 적어놓은 메모들.


'제가 읽었던 책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와, 참 많이도 읽으셨구나.

책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 같다.


감탄이 흘러나왔다.


다양한 세상들이 한 권, 한 권 꽂혀 있었다.

읽었던 책도 있었지만, 못 읽어본 책들이 더 많았다.


한 권, 한 권 정성스럽게 쌓고, 세우고. 펼쳐놓았다.

분명 좋아하는 책들이겠지.


한쪽에는 위스키 테이블도 있었다.

책과 위스키라.

한 번 즈음은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취중독서.


사장님은 테이블 한쪽에 자리 잡고 앉으셔서 말없이 책을 펼쳐 보고 계셨다.


다시 자리로 가서 커피와 함께 독서에 집중했다.

시간이 꽤 지나도록,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동생과 나는 괜스레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살짝씩 나누었다.


"아니, 여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없어. 평일이라 그런가? 분위기도 좋고 너무 예쁜데."

"사장님은 좀 무뚝뚝하시다"

"좀 그렇긴 한데,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든다. 자주 오자."

"그럴까?"

"우리 자주 오면 사장님하고도 친구 되는 거 아냐?"

"그건, 힘들 것 같지 않아?"


푸흐흐, 동생과 나는 마주 보면서 킥킥 웃었다.


아이들을 챙겨야 해서, 아쉽지만 그만 일어나야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왠지 안심이 되는 이 마음 뭐지?


북카페를 나서면서도 섬세하게 구석구석 놓여 있는 책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문 밖으로 나가기 일보 직전까지도, 비어 있는 곳 없이 책들이 빼곡했다.

심지어 문을 닫고 나와서도 책이 놓여 있었다.


'아니, 누가 가져가면 어쩌려고'


지독한 책사랑에 빠져 계신 게 아닐까.

동생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어쩐지 사장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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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까지 놓여있던 책.

사장님, 진짜 누가 뭐 묻히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그 와중에 김영하 산문 읽고 싶어진다.

이러다가, 화장실에서 책 읽느라 안 나가겠어요.


오래오래 운영하세요.

사람들 꼬셔서 자주 갈 테니까요.

말없이 보여주신 취향이 귀했던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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