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 점심은 뭐예요?

독감 격리 중, 별 거 없는 하루 풍경.

by Wishbluee

2025년 11월 12일 오후 3시


둘째의 독감판정으로 인해, 강제 동반 칩거 중.

희뿌연한 하늘이지만, 그래도 햇살이 따사한 게 어제보다는 온도가 좀 따뜻한가 보다 짐작한다.


아이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는다.

열도 싹 내렸고, 쌩쌩한 것이.

바이러스 투척기가 되지 않기 위해, 집안에 붙잡아두는 거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격리다.


"자, 친구야. 이제 너 밀린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다."


아이는 숙제를 한다면서 몰래몰래 딴짓을 한다. 아직은 애기라서 모양새가 뻔한 데, 어쭈, 올곧은 눈빛을 하고서는 뻔뻔스럽게 집중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요 녀석 봐라? 나도 지지 않고 인상을 팍 쓰면서, '엄마는 거짓말하는 아이가 제일 싫다고 이실직고해'라고 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화내지 않겠다'라고 하니, '사실 딴짓 했다'라고 슥 고백하는 녀석. 요놈 보시게.


별 거 아닌 한마디만 들어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미안해요, 엄마] 하던 시절의 너는 이제 안녕이구나.


KakaoTalk_20251112_110606376.jpg


아이와 집안에만 있다 보니 시간이 멈춘 듯하다.

그러다가도 이처럼 주고받은 몇 마디에 훌쩍 지나간 세월을 실감하곤 한다.

이 무슨 아이러니.


냉장고를 뒤져 점심거리를 찾는다.

달의 중반즈음에는 장을 보기가 무섭다. 생활비가 슬슬 떨어져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뒤적뒤적 냉동실 한 구석 끝에서 꽁꽁 언 자숙우렁살을 찾았다.

냉장실 서랍에서 비명횡사 직전의 야채들을 모조리 꺼내서 작은 크기로 깍둑썰기를 해놓고, 우르르 냄비에 넣었다. 된장 몇 스푼 크게 떠 넣고, 고추장 한 스푼을 넣는다. 물을 조금만 넣고 불을 올리고 끓는 모습을 지켜본다. 툭툭 썰어 넣은 재료들이 보글보글 끓자, 문제집을 풀던 둘째가 킁킁 냄새를 맡는다.


조금 덜어다가 밥에 비벼 맛보라고 주니, 한 입에 먹어치운다.


입맛 까탈스러운 큰애는 음식을 할 때 조르르 와서 입맛을 다시는 일이 잘 없는데. 둘째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면 침부터 꿀꺽 삼킨다. 그래서 우리 집 기미상궁은 둘째다. 조그마한 종지에 덜어다 찻수저를 얹어 주면 소꿉놀이 하듯이 조그마한 한 상이 된다. 그걸 또 허겁지겁 먹어치우며 남은 손으로 엄지 척을 올려대는 요 녀석은 참 밥 해주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


머리를 쓰다듬어보니, 며칠 안 감아 머릿결이 거칠거칠하다.

아프니까 대충대충이다. 나도 아이를 대할 때 풀어져 버리게 되니, 어쩐지 해방감도 느껴진다.

잘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도 잠시 벗어나서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조그마한 그릇에 담긴 시식거리를 해치우고 있는 손가락, 울룩불룩 통통한 양볼, 열중하고 있는 찡그려진 도톰한 눈썹사이, 집중하느라 생긴 미간 주름까지. 세세히 보인다.


"이제 숙제하고 있어. 점심 차려줄 때까지."


관성에 의한 잔소리.

꼬맹이의 미간이 확 풀어진다. 그리고는 다시 인상을 쓰니 눈썹 끝이 올라간다.

입술을 꾹 다물더니


"네. 알았어요."


미미미미... 한 가지 계음으로 대답하는 너.

요 꼬라지도 귀여우니 어쩜 좋을꼬. 참 너네 엄마도 중병이다.

뒤돌아서 자리로 가서 다시 툴툴거리며 앉아 문제집을 펴드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점심준비를 한다.


사실 바로 점심을 차릴 거라, 문제집 풀 틈도 없을 거다.

애 둘을 키우니, 내 생각과 다르게 입만 열면 정 떨어지는 잔소리가 습관적으로 툭툭 튀어나와 버린다.

그래도 둘째는 점심 맛있게 먹고 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질 걸 잘 알고 있다.


하루의 한 장면이 이렇게 또 흘러간다.

소소한 그 장면이 아쉬워서, 글로 붙잡아 사진처럼 브런치에 찍어두어 본다.





keyword
이전 07화엄마, 찍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