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찍지 마!

초상권이 있는 걸 알아채버린 꼬맹이, 이제 숙녀가 되어가나 보다.

by Wishbluee

2025년 11월 11일 오후 4시 57분


며칠 오락가락하던 열이 자리를 잡았다.

음, 영 열이 떨어지지 않으니 오늘은 등교를 하지 않고, 병원으로 간다.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고 주섬주섬 옷을 입혀 서둘러 집을 나선다.

예상대로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다.


오픈런을 뛰었는데, 40분을 기다려야 한다. 맛집 뺨치는 독감시즌의 병원.

우리 아이도 유행에 편승한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얻은 결과.

독감 당첨.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먼저 알약은요, 5일 정도 먹어야 하고요. 구역질이 날 수 있어요. 하지만 보험은 적용됩니다. 나머지 방법은요 수액인데요. 8만 원 정도 하고요. 실비보험은 되고요. 맞으면 바로 좋아집니다."


선택할 수 있는 거 맞죠, 쓰앰?


두려움에 울상이 된 꼬맹이를 병원 침대에 눕힌다.

벌건 얼굴로 한 팔로는 책을 끼어들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울 아가.

그 모습이 또 귀여워 카메라를 드니,


"찍지 마!!"


하고 성질내면서 눈물을 내비친다.

카메라만 보면 브이를 하던 꼬맹이였는데.

눈가를 찌그러뜨리며 바라보니 당황스럽다.


"어어, 미안해"


얼른 카메라를 끄고, 사과를 했다.

그러자 아이의 눈빛이 다시 순둥 해진다.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오른손을 걷고, 주사 놓을 자리를 찾는다.


"따가워요~~"


입술을 꾹 다물고 묵묵히 아픔을 견디어 내는 꼬맹이의 몸짓이 꽤나 의연하다.

주삿바늘을 꺼내고 수액튜브를 연결할 때까지 신음소리 하나도 내지 않는다.

원래도 주사를 잘 견디는 아이였지만, 오늘따라 왠지 한층 성숙해 보인다.


"엄마, 떡 사가지고 올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아가를 두고 병실문을 닫는다. 나오면서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아이의 모습을 흘깃 본다. 대충 덮어둔 이불 사이로 조그마한 발바닥이 두 개, 봉긋 올라와 있다. 아직도 너무너무 아기 같다.


하지만 손모양이 이제 제법 미끈해졌고, 몸도 길쭉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몰라보게 자라난다.

원래 애들은 아프고 나면 더더욱 빨리 자라니까. 내일 아침이 되면 또 훌쩍 자라 있겠네.

그 생각이 들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오늘을 더 담아두고 싶어 져서,

조그마한 발바닥을 계속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병원 밖으로 나왔다.


"맛있어!!"


찰떡을 껍데기채로 입에 물고 우물우물하는 통통한 볼이 움직 움직 이는 거를 바라보니 웃음이 나온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두 시간 동안 병원에 있었더니, 유독 떡이 달고 맛있게 느껴지나 보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늘 엄마는 조금씩 긴장을 하나보다. 집으로 가는 길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 문득 아이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진다. 그런데 얼굴을 찍는 건 이제 조심스러워진다.


"네 발을 조금 찍어도 되겠어? 낙엽이랑 어우려 저서 너무 이쁘다"

IMG_5390.JPG 낙엽을 툭툭 차다가 낙엽대신 한쪽 신발이 내쳐진 모습.


프레임에 담긴 아이의 발이 사랑스럽다. 그러다가 들어온 풍경이 새삼스럽게 예쁘길래 나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왔다.

IMG_5399.JPEG


"어머, 여기가 이렇게 예뻤나?"


"엄마. 원래 여기는 엄청 예뻐. 예쁜 것 투성이인데, 엄마는 늘 못 보는 거야. 원래 애기들은 이런 걸 다 보고 살아. 그냥 이렇게 예쁘게 있는데 그걸 엄마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야."


아. 그러니. 그렇구나.

아이의 시선이 아직은 네 눈에 머물러 있어서 기쁘다.

덕분에 나도 너를 통해, 이렇게 예쁜 걸 볼 수 있으니. 행복하다.


찰떡을 우물우물하는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 물어본다.

"엄마가 네 얼굴 좀 찍어도 되겠어? 엄마 혼자서 볼게."

그러자 너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좋아!"





-수액은 과연 효과가 좋더군요.

-열 내리고 싸돌아다니는 걸 붙들어서 재웠음.

-숙제 안 한다고 좋아하고 있음

-미안해 내일은 해야 할 거 같아

keyword
이전 06화때타월을 이마에 얹은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