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하다.
2025년 11월 27일 오후 4시
아침부터 비가 퍼붓듯 내렸다. 반납할 책을 바리바리 챙겨 도서관으로 갔지만, 갑작스러운 폭우 탓에 시스템이 고장이 났다고 했다. 반납은 가능하나 대출은 불가. 빈손으로 돌아서는 길은 생각보다 허전했다.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던 중 큰 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엄마 오늘은 순두부 라면이 먹고 싶어.
며칠 전부터 입맛이 없다고 속상해하더니, 드디어 먹고 싶은 게 생긴 모양이다.
그러면 또 비를 뚫고 사러 가야지.
비가 그칠 듯 말 듯 계속 퍼붓고 있었다. 바람까지 불어서 낙엽들이 회오리치며 후두두두 떨어졌다. 빗물이 오래되어 깨진 보도블록 틈에 고여있다. 밟지 않게 조심해서 피해 옆으로 비켜섰다. 내 앞에는 어르신이 우산을 들고 천천히 걷고 계셨다. 나는 우산을 비스듬히 들어 어르신을 앞질러서 걸어갔다. 흐린 하늘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조금씩 작아졌다. 횡단보도 정지선에 섰다. 매일 보는 익숙한 사거리다.
마트에서는 라면 두 묶음 사면 10퍼센트 할인이 된단다. 바리바리 주워 담고, 순두부도 두 개 사고. 입맛 없다는 따님을 위해 평소 좋아하던 과자도 몇 개 담았더니 어느새 한 짐이다. 내 좁은 어깨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낑낑거리며 다시 올려본다. 흠! 힘주어 팔로 탁 고정을 하고 다시 걷는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다, 그만 잉어빵가게가 눈에 띈다. 아이고, 저거 작은 애가 좋아하는데. 다시 발걸음을 되돌려 돌아서 잉어빵을 사러 간다. 또다시 미끄러지는 장바구니와 씨름하며 지갑을 꺼내 잉어빵을 사고, 눌리지 않게 조심조심 틈 사이에 넣었다. 따끈한 온기가 겨드랑이까지 전해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큰 딸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엄마 사이다도 하나 사주면 안 돼요?
작게 ‘아이고’ 하고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별 일 아닌 일들로 이루어진 일상이었다.
그냥 비 오는 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 못한 것, 라면을 사러 간 일, 장바구니를 고쳐들던 순간들, 잉어빵을 사러 돌아가는 평범한 하루.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조그마한 순간들을 하나, 하나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냥 비 맞으면서 라면 사러 가는 길이었을 뿐일 오늘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섬세하게 바라보면, 어느새 하나하나 반짝반짝 빛이 나는 장면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렇게 스쳐 지나쳐가는 생각들이 한 방울, 한 방울 모여져서 나만의 작은 샘이 된다.
글쎄, 어쩌면 굳이 남기지 않아도 될 사소한 것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은 그런 하찮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오늘의 작은 하찮음 들을 한 땀 한 땀 브런치에 수놓는다.
의미 없는 것들은 그렇게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들이 된다.
비바람에 떨어져 바닥에 흩어진 나뭇잎들이, 사실은 커다랗고 풍성한 나무였음을 잊지 말자고 생각해 보는 오늘이었다.
-사이다는 피곤해서 못 사 오겠다. 큰애한테 사 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