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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정원에서 낭만을 꿈꾸며

7. '에밀 놀데 박물관' 이야기

by 새벽별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지만, 이 시골 경치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늘 부족함을 느낀다. 덴마크에서 독일 국경을 넘어가도 풍경은 끊임없이 이어져, 두 나라를 가르는 경계선은 오히려 무색해진다. 지도에서 모든 국경이 사라진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보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바다와 하늘, 들과 꽃이 어우러진 이곳의 멋진 경치를 그림으로 옮긴 화가가 있다. 바로 최초의 표현주의 화가인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이다. 본명은 한스 에밀 한센(Hans Emil Hansen)이었지만, 그는 고향 마을의 이름을 성으로 삼을 만큼 이 땅을 사랑했다. 고향에서 아내와 마지막 생애를 함께 한 집은, 지금 박물관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정원 한쪽에서 부부는 나란히 잠들어 있다.


놀데의 본성, 한센(Hansen)은 덴마크에서 세 번째로 흔한 성이다. 독일화가로 알려진 그는 덴마크 영토였던 고향이 독일 점령지가 된 이후에 태어났다. 놀데는 독일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젊은 시절에는 나치당 지지자로 가입해, 후일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모더니즘을 퇴폐미술로 규정한 나치 정권에 의해,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이 철거되고, 그림 그리기를 금지당하는 등 많은 탄압을 받기도 했다.


'여름은 아름답다. 여름은 햇살이 따뜻했다. 정원에는 꽃이 가득하다.' -에밀 놀데


<정원에서 산책하는 아다와 에밀>

그의 말처럼, 우리가 방문한 여름날에도 햇살은 따사로웠고 바람은 부드럽게 얼굴을 스쳤다. 박물관 정원에 발을 디디자, 알록달록한 꽃무리가 반겨주었다. 해바라기, 금잔화, 루드베키아, 살비아, 양귀비 등 화려한 꽃들은 마치 놀데의 수채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이 정원은 놀데가 예술작품처럼 직접 설계했다고 한다. 나치 정권하에서 그의 작품이 퇴폐미술로 낙인찍혔을 때, 그는 이곳에서 몰래 그림을 그리고 아내와 산책을 즐기곤 했다.


놀데의 유화는 거칠고 투박해서, 나는 부드러운 수채화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 그 속에는 경계가 사라지고, 바다와 들과 꽃이 물감처럼 퍼져 하나의 자연으로 흘러든다. 덴마크인인지 독일인인지, 그런 정체성이 그에게 중요했을까 싶다. 다만 자연 앞에 선 한 인간으로서, 그의 눈과 가슴을 흔든 풍경들을 강렬한 색채로 쏟아냈다. 그림에는 고요한 풍경 속에서도 시대의 아픔을 담은 격정의 파도가 치고, 때로는 삶의 행복이 화사하게 번져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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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전시된 꽃 그림들, Landscape 1935>

꽃길을 걷다 보니, 정원 끝에서 노란 문이 달린 오두막 ‘세부르친(Seebüllchen)’이 보였다. 파란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만 놓인 소박한 공간이다. 놀데와 아다는 이곳에 앉아, 차를 마시며 꽃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우리도 잠시 앉아보니, 문밖으로 아름다운 정원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해외에 있던 놀데가 보낸 글을, 아다는 이곳에서 타자로 옮겼다고 한다. 남편을 그리워하며 한 글자 한 글자 눌렀을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놀데는 세계 여행을 즐겨했는데, 1913년에는 아내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그가 최초로 한국을 여행한 세계적인 화가였다니, 놀랍고도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국인을 그린 그의 그림에는 슬픔과 절망감이 깊이 배어 있는 듯했다.


<화가의 정원과 오두막>


<부부의 거실>

오두막을 나와 큰 연못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 위의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많은 유화와 수채화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꽃을 그린 수채화의 향연을 보니, 이제는 놀데의 정원이 화폭에 옮겨진 듯했다. 부부의 생활공간이었던 거실도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의자에는 아다가 직접 수놓은 방석이 깔려 있었는데, 남편 못지않은 그녀의 미적 손길이 느껴졌다. 거실에서 서로 기대어 다정한 포즈를 취한 부부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예술가는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이렇게 남아 여전히 우리를 맞이하며 말은 건넨다. 국경은 바뀌어도 풍경은 계속 이어지듯, 시대가 바뀌어도 한 시대를 강렬하게 표현했던 놀데의 작품은 계속 사랑받고 있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보라... 저마다 개성이 넘치는 색채들이 부딪히지 않고 스며들어 경계를 지웠기 때문일까?


화가의 정원에서, 그의 그림이나 명성보다 더 부러웠던 것이 있었다. 바로 노년에도 낭만을 잃지 않고, 서로의 곁을 지켰던 놀데 부부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경계는 없어지고, 비로소 하나가 된 듯한 삶이었다. 이곳처럼 넓은 정원은 아니지만, 우리 제주 집에도 작은 정원이 있다. 멀찍이 앞서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년의 어느 날, 우리도 팔짱을 끼고 꽃무리 사이를 거니며, 놀데 부부처럼 소소한 낭만을 누릴 수 있을까?



놀데 박물관: STARTSEITE - Nolde Museum Seebüll

부부 사진 출처: Selbstverständnis - Nolde Museum Seebüll

수채화 출처: Landscape, 1935, 47×34 cm by Emil Nolde: History, Analysis & Facts | Art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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