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수수께끼 같은 '황금뿔'(The Golden Horns) 이야기
그동안 남덴마크 시댁 주변의 소소한 볼거리를 소개해 왔다.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시부모님이 사는 마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겉보기에는 작고 한적한 시골이지만, 덴마크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바로 그 유명한 두 개의 '황금뿔(The Golden Horns)'이 발견된 곳이기 때문이다. 동네 이름은 몰라도, 신비롭고 비극적 운명의 황금뿔은 덴마크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황금뿔은 5세기 초 철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39년, 크리스틴이라는 여인이 첫 번째 황금뿔을 발견했고, 이어 100년 뒤인 1734년에 에릭이라는 남성이 두 번째 황금뿔을 찾았다. 길이가 75센티에 지름이 10센티나 되는 황금뿔은 술잔이었을까, 전쟁 나팔이었을까? 학자들의 추측만 무성할 뿐, 오랫동안 평지에 묻혀 있던 이 보물의 용도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귀한 유물은 오래가지 못했다. 1802년, 도난당하고 녹여져 귀금속으로 팔린 것이다. 당시 덴마크 사람들의 상실감은 무척 컸다. 이후 복제품이 만들어져 박물관에 전시되었지만, 이마저도 두 차례나 도난당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오늘날 덴마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황금뿔은 모두 복제품이지만, 여전히 초기 게르만 사회와 종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집에서 북서쪽으로 5분쯤 걸어가면, 나무들로 둘러 싸인 작은 공원이 나온다. 그곳에는 사람 키보다 큰 기념석 두 개가 20미터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 있다. 기념석에는 언제, 누가 이곳에서 황금뿔을 발견했는지 새겨져 있어, 관광객들은 그곳이 실제 발견 지점이라 믿는다. 하지만, 진짜 자리는 따로 있다는 걸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나도 시어머니께 들어서 정확히 알고 있다.
첫 번째 황금뿔을 발견한 이야기는 참 흥미롭다. 실제 자리는 현 위치에서 3~4백 미터 떨어진 물레방앗간이 있던 곳이다. 약 400여 년 전, 동네 아낙 크리스틴은 일을 하러 갈 때마다, 늘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어느 날 더는 참을 수 없어 그 돌을 파냈더니, 그것은 황금뿔이었다. 그녀는 왕에게 바쳤고, 대가로 옷 한 벌을 받았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시어머니는 허탈하게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보상이 너무 형편없었지. 겨우 옷 한 벌이 뭐야! 왕이 너무 구두쇠였던 거야."
길이가 좀 더 짧은 두 번째 황금뿔은 현 공원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농부였던 에릭이 밭을 갈다가, 흙 속에서 반짝이는 그 보물을 찾아냈다. 그도 왕에게 헌납했고, 당시 노동자의 몇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받았다. 이 두 번의 발견 덕분에, 작은 마을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20세기 중반, 저명한 덴마크의 고고학자 글롭(Dr. Glob) 박사는 세 번째 황금뿔의 존재를 확신했다. 그는 두 번째 발견 지점을 발굴하려 했지만, 그곳에서 닭장을 운영하던 '치킨맨'에게 쫓겨났다. 당시 동네 사람들은 치킨맨의 닭장 밑에 세 번째 황금뿔이 묻혀 있을 거라며 농담하곤 했다.
쫓겨났던 고고학자가 다시 찾은 곳이 있었다. 시댁의 주방 창문에서 보이는 드넓은 들판이었다. 시아버지가 어렸을 때, 시할아버지의 소유였던 그 땅에서 글롭 박사는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다행히 시할아버지는 치킨맨과 다르게 친절한 분이었다. 발굴 작업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글롭 박사는 정부로부터 부름을 받고 코펜하겐으로 돌아가야 했다. 떠나면서 그는 시할아버지께 이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여긴 아주 중요한 땅이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이 근처에 오면 안 되오."
하지만,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세 번째 황금뿔 발굴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글롭 박사가 무슨 이유로 그 들판에 세 번째 황금뿔이 묻혀 있다고 확신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아버지는 물려받은 그 땅을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두면서 풀들이 자라면, 소들에게 먹일 여물을 만들곤 했다.
어느 해 여름, 호기심 많은 딸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세 번째 황금뿔을 찾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남편은 금속탐지기와 삽을 준비했고, 우리는 처음으로 그 들판으로 걸어갔다. 시부모님은 우리가 황금뿔을 찾는다면, 뉴스에 영웅으로 나올 거라며 응원해 주셨다.
첫날, 금속 탐지기를 땅에 대고 '삐익 삐익' 소리가 날 때마다, 우리는 기대하면서 땅을 팠다. 그러면 고작 작은 철사나 낡은 동전이 나왔다. 첫 술에 배부를 리가 없었다. 두 번째 날에는 제법 큰 쇠사슬 하나를 찾았는데 섬뜩했다. 시아버지는 말을 묶을 때 사용하는 거라면서도 진지하게 바라봤다. 흥미를 잃은 나는 팀에서 나왔지만, 딸과 남편은 그 뒤에도 며칠 더 땅을 파러 다녔다. 뚜렷한 성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모험이었다.
이 마을에는 미스터리한 전설도 전해진다. 세 번째 황금뿔은 빨강머리 처녀가 발견할 것이고, 그 순간 이 지역 최고 권세가인 쉐켄보르 성은 불타 없어진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빨강머리였던 시어머니를 보고, 남편은 웃으며 농담을 던지곤 했다.
"엄마가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겠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편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성에 난 불 자체가 빨강머리를 상징하고, 불에 타고 남은 잔해 밑에서 어쩌면 백작이 왕에게 바치기 싫어 숨겨 둔, 세 번째 황금뿔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듣고 보니 그럴듯해 웃음이 나왔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황금뿔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자부심 그 자체이다. 보석가게에 가면 황금뿔 모양의 펜던트로 만든 장신구가 여럿 진열되어 있고, 나도 시부모님께 목걸이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몇 년 전 이곳으로 돌아온 남편 친구는, 황금뿔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밴드에서 부르기도 했다.
아직은 발견되지 않는 세 번째 황금뿔. 언젠가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런데 빨강머리는 아니지만, 버건디색으로 즐겨 염색하는 내가 이미 찾아버린 것 같다. 바로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세 번째 황금뿔을 말이다.
Large Gallehus horn images - Golden Horns of Gallehus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