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덴마크 시골에 별장을 가지고 있다. 매년 여름, 가족들과 함께 덴마크 남쪽 끝의 여름 별장에서 휴가를 보낸다. "별장을 소유하다니, 부자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1년 전, 생애 첫 집도 대출로 간신히 마련한 처지라, 덴마크에 별장을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그 별장은 시댁이다. 덴마크 남쪽의 작은 시골 마을로, 차로 5분만 가면 독일 국경에 닿는 곳이다. 내가 자란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90년대 말, 덴마크 입양인인 남편을 만나 시댁을 처음 방문했을 때,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경험은 마치 신세계를 만난 듯했다. 몇 걸음 앞으로 나가면 독일, 다시 뒤로 걸어오면 덴마크라는 사실이 어리둥절할 만큼 놀랍고 신기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한때 독일에 속했다가 100여 년 전에 주민 투표를 통해 다시 덴마크로 돌아온 곳이다. 그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은 덴마크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그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법도 한데, 오히려 뿌리 깊은 소속감을 보여준다.
남편이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는 같은 유럽권이라 시댁에 자주 들렀다. 이후로는 매년 여름,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는 늘 이곳을 찾았다. 덴마크 방문은 단순히 시댁을 찾는 것을 넘어,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힐링하는 느낌이 강했다. 여름에도 시원하고 쾌적한 날씨, 끝없이 펼쳐진 평야와 바다, 그리고 예스러운 매력을 간직한 마을은 나를 매료시켰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덴마크의 '시골 별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년 여름에는 이 별장을 찾는 것이 망설여졌다. 연초부터 제주에 집을 마련하고 대출 준비, 리모델링까지 하느라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입주가 끝난 뒤,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자연스럽게 힐링이 되자, 굳이 덴마크까지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장 큰 고민은 고양이들이었다. 스트레스로 결막염까지 걸렸던 고양이들이 막 제주 집에 적응한 상황에서, 3주나 집을 비워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더구나 내 손목 골절로, 수술 후 치료를 받고 있던 터라 여행이 번거로워 보이기만 했다. 시어머니도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우리가 방문하면 오히려 시부모님에게 더 부담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럼에도, 연로하신 시부모님을 일 년에 한 번 뵙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가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선 고양이를 위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제주도에는 고양이 호텔이 많지도 않지만, 마당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을 좁은 곳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대신, 집으로 방문해 돌봐줄 펫시터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다행히 근처에 거주하는 좋은 분을 만나 고양이들을 맡길 수 있었다. 덕분에 마음 한 구석의 큰 짐이 덜어졌다. 또 여행 바로 전에 답답한 깁스를 풀고, 보호대로 대체해 손목도 자유로워졌다. 이제 여행을 떠날 준비가 끝났다.
이번 방문은 제주도에서 시작해 그 여정이 조금 더 길고 힘들었다. 시댁은 덴마크 남쪽이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차를 렌트해 가는 것이 더 편리하다. 함부르크에서 아우토반을 달려 덴마크로 들어가는 길은 익숙하면서도 늘 새롭다. 아우토반은 나치 독일이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만든 도로라고 한다. 일본이 식민지 수탈과 대륙 침략을 위해, 한국인 노동력을 착취해 건설한 한국 철도처럼 말이다. 아우토반을 달릴 때마다 편리함과 역사적 무게 사이에서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막 더워지기 시작한 제주를 떠나 도착한 6월 말의 덴마크는 여전히 선선했다. 20년이 넘도록 다녀갔지만, 시댁이 있는 마을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초록 들과 황금 밀밭, 그리고 주황색 기와집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반 고흐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갈 때마다 더 이상 뵐 수 없는 마을 어르신들이 늘어가는 것은 가슴 아픈 변화였다.
양쪽에 밀밭이 있는 큰길을 따라 달리다 작은 길로 접어들면, 주황색 지붕과 붉은 벽돌로 된 덴마크식 이층 주택이 예쁜 정원에 둘러싸여 있다. 바로 우리의 '시골 별장'이다! 차를 세우고 경적을 울리자, 시부모님이 늘 그렇듯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하지만, 허리를 다친 시어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나오는 걸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정원에서는 반려견 루나가 신나게 뛰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 주기를. 시부모님과 시골 별장, 그리고 이곳에서 쌓아온 소중한 기억들. 그런 마음을 담아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이 시골 별장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