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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안내자 지후 Oct 22. 2023

저 선배 혹시 종교생활 하나요?

대기업 퇴사 후 명상선생님이 되었다고요?

그렇게 이직한 회사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매일매일 주가가 최고가를 경신했고 이번 달은 얼마나 높은 실적을 달성했는지가 연일 화제였다. 나의 두 번째 회사이자 마지막 회사가 된 곳은 아모레퍼시픽이었다. 나는 고가 화장품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광고홍보를 담당했다. 회사가 뭘 해도 잘되던 시기였기에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즐거웠다.


성과가 눈으로 바로바로 확인이 되던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내가 바라던 직무 전문성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물론 어려운 일이 참 많았지만 다양한 일을 했고 시야를 넓혔으며 노력해서 성취한 나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CJ에서의 7년이 나에게 업무에 대한 탄탄한 이해도와 기반, 그리고 끈끈한 동료애와 조직생활의 즐거움을 선물해 주었다면 아모레퍼시픽에서의 5년은 회사원으로서의 내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 주었다.


하지만 호시절이라고 힘든 일이 없었겠나. 내가 담당하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무는 감성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일이기 때문에 업무 민감도가 높고 일의 속도도 매우 빨랐다. 당연히 일로, 관계로 고민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매일이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사원/대리 직급으로 선배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면, 여기서는 과장/차장 직급이었으니 실무로서도 성과를 제대로 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었다. 하루하루 쉽지 않았고 여전히 좌충우돌했으며 매일매일 스스로의 한계치를 갱신하며 사는 것 같았다. 일상이 수행이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때도 여전히 힘들 때마다 명상을 하고 책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나의 믿는 구석이자 힘들 때마다 찾는 든든한 친구였다.


"팩트와 감정을 구분해 봐" 

업무 상 갈등으로 조언을 구하던 후배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돼서 일에 문제가 생긴 것은 팩트겠지, 여기에는 분명 놓친 것이 있을 거야. 그럼 지금 그걸 바로잡아 해결하고, 앞으로 이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 되겠지. 팩트는 이렇게 하면 심플하게 정리할 수 있어. 하지만 네가 힘들어하는 것은 감정의 영역인 것 같아. 이 일을 처리하면서 생긴 여러 가지 힘든 감정들 그리고 그 사람과 문제가 생겨서 앞으로도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나 걱정 같은 감정들이 합쳐진 스트레스 말이야. 물론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겠지.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일이고 또 지나간 일이기도 하잖아. 지금 이 순간 네가 지나간 일과 오지 않은 일을 생각하면서 감정적인 부분을 증폭시켰을 수 있거든. 힘든 일이 생기면 이렇게 팩트와 감정을 한번 분리해 봐. 생각보다 일이 심플하게 느껴질 거야"



이 조언을 들은 후 후배는 눈에 하트를 동동 띄우며 귀여운 쪽지와 함께 간식을 내 책상위에 두고 갔지만 사실 이건 그간 읽은 명상 서적에 수도 없이 나온 이야기를 내가 업무에 맞는 단어로 바꿔서 적용한 것일 뿐 정말 특별할 것이 없었다. 나 역시도 마음에 되새기며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저 선배 종교생활하나요?' 

유관부서 팀원이 우리 팀 후배에게 나에 대해 물으며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큰 회의를 주관할 일이 많았다. 데드라인은 임박하고 이번 회의에 무조건 결론을 내야 하는데, 참석자는 많고 의견도 분분한 상황에 그 자리에서 의견을 정리해서 결론을 도출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았다. 그 유관부서 팀원은 회의를 주관하는 내 모습이 매우 침착해서 놀랐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피식 웃었다. 나는 이전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그 사이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성숙도가 높아졌을 수 있지만 이전의 나는 놀랍도록 차분한 사람이 확실히 아니었다. 예전에 비해 겉으로도 드러나는 내면의 힘이 생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마음 한편으로 늘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명상이 나의 건강을 되찾게 해 주었으며 나의 내면을 점점 더 단단하게 해주고 있는 건지 가끔은 정말 답답할 정도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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