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명상선생님이 되었다고요?
회사에서 최고가 브랜드를 담당하던 때였다. 그 브랜드의 시그니처 행사를 기획하면서 나는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했다. 중요한 행사였기에 정교하고 세심한 기획이 필요했다. 전달해야 할 내용도 많았고, 제주도에서 진행됐기에 초대된 분들도 모두 비행기를 타고 오셔서 피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행사 기획에 잠깐의 휴식의 시간을 넣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냥 쉬는 것은 절대 안 되고 휴식의 시간 역시 브랜드에 맞게 가치 있는 경험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잠깐의 충전하는 시간을 넣으면 행사를 통해 발신하려고 하는 메시지들을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나는 명상을 알지 않는가, 명상이 얼마나 좋은 휴식법인지 알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그때 역시 명상에 대한 인지가 없어 명상이라 하면 기수련 하는 아저씨 느낌을 연상시켰고 아름다움이 중요한 행사에서 그런 콘텐츠는 절대로 다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꼭 하고 싶었다. 명상이 주는 그 가볍고 시원하고 텅 빈 느낌.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만큼 럭셔리한 것이 어디 있는가. 행사 콘텐츠로 명상을 기획하려면 기존의 방법 말고 전혀 새로운 요소가 필요했다. 명상을 새롭고 신선하게 그동안 해보지 않은 경험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나는 방법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날도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있었고, 여전히 그 부분은 풀리지 않고 있었다. 명상을 새롭고 신선하게 해보지 않은 경험으로 전달한다니 쉽지 않았다. 내가 이 부분에서 계속 막혀 있으니 같이 일하는 에이전시에서도 답답했을 것이다. 각자 회사에서 야근을 하며 전화로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파트너사 팀장님이 나에게 영문 기사를 하나 보내주었다. 기사의 내용은 "최근 뉴욕에서 싱잉볼 사운드를 가지고 명상을 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다"라는 내용이었다. 싱잉볼? 소리명상? 그리고 심지어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새하얀 싱잉볼의 아름다운 자태는 뷰티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싱잉볼을 다루는 곳은 딱 한 군데 밖에 없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곳에 연락을 하고 행사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워낙 새로운 문물에다가 싱잉볼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을 때라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첫 체험을 하러 갔던 날 일도 많고 시름도 많을 때라 체험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을 정도로 그날의 나는 매우 피곤했다. 그런데 처음 만난 싱잉볼은 나를 예전에 통증에서 신음하다 느낀 그 시원한 섬광 같은 순간을 순식간에 선사해 주었다. 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나는 완전히 릴랙스 되었다. 휴식을 주고 싶다는 나의 의도에 정확하게 부합했다.
싱잉볼의 진동이 워낙 느리고 조화로운 진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바쁜 상태였던 내 몸과 마음의 리듬을 순식간에 느슨하고 편안한태 상태로 바꿔준 것이었다. 싱잉볼과 공명이 일어나며 내 몸이 빠르게 이완된 것이었다. 그렇게 싱잉볼 선생님을 섭외했다. 제주도에서 약 일주일간 매일 한 시간씩 행사의 하나의 콘텐츠로 싱잉볼 명상을 진행했다. 행사에 초대된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 싱잉볼 명상 시간이 끝나니 볼이 발그레해지며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처음 보는 싱잉볼에 대한 호응도 높았고 다음 순서로의 연결도 매끄러웠다. 새하얀 크리스털 싱잉볼의 자태는 제주의 풍경이 삼면으로 보이는 통창 앞에서 아름다움의 빛을 더했다. 무엇보다 싱잉볼 소리에 반해버린 나는 싱잉볼 선생님께 이야기했다.
"제가 시간 될 때 꼭 배우러 갈게요." 진심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심이지, 하지만 시간이 날 일은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