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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안내자 지후 Oct 22. 2023

인생 과제를 해결하러 다시 학교에 갑니다.

대기업 퇴사 후 명상선생님이 되었다고요?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마음 깊은 곳에는 또 하나의 풀지 못한 숙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도대체 내가 왜 어떻게 그 통증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명상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렴풋이 추청해 볼 수는 있었지만 나의 케이스에 온전히 대입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내가 어떻게 좋아진 것인지 나는 직접 알고 싶었다. 나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아니 답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 학교에 입학했다. 



명상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학교는 여러 곳이 있지만, 나는 명상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부터 시작해야 했기에 현대의학과 보완, 대체의학을 융합하여 연구하는 통합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호기롭게 입학은 했으나 만년 문과였던 나는 시작부터 난제에 부딪혔다. 의학용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 첫 학기에는 수업의 50%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전 같았으면 뒤처지는 느낌이 싫어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무엇이든 잘해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습관이 있다는 것을 명상을 통해 알게 된 나는 스트레스가 느껴질 때마다 되뇌었다.  '이건 지금 내 마음의 습관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뿐이야, 평생 문과였던 내가 잘 못 알아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내가 해야 할 일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알면 된다는 것이야. 스트레스를 주는 생각에 빠지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자.' 시간이 흐르자 정말 조금씩 알아듣게 된 것인지 아니면 못 알아듣는데 익숙해진 것인지 공부가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수업이 개설되기에 본인이 공부하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히하여 큐레이션 하듯 수업을 수강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꼭 듣고 싶었던 과목 중 하나가 만성통증 관련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이 분야에 전문가로 알려진 명의이셨는데 의학을 전공하신 의사이시지만 첨단 생명공학과 동양의학에도 조예가 깊으신 분으로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해 주시며 그야말로 통합적인 관점에서 고찰해 볼 수 있게 해주셨다. 흥미로운 수업이었기에 나는 교수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만성통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중에 해당 조직에 이상이 없는 경우는 신경계 이상반응을 추정해 볼 수 있다고 하셨다. 통증이 척수와 뇌로 전달되면서 해당조직에선 정상수치인 통증이 전달 과정에서 몇 배로 크게 인식되면서 실제 발생하는 통증보다 몇 배 혹은 몇 십배 이상으로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맞다. 정확하게 그때 나의 머리에는, 교수님의 표현에 따르면 해당 '조직'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극심하게 통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약물을 계속 바꿔도 차도가 없었다. 


이 만성 통증을 경감시키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는데, 첫째로 약물 투여를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적합한 약물을 찾아내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리고 해당 부위를 찾아내 직접 주사로 약물을 투여하거나 물리적 치료를 가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 부위를 직접 찾아내는 것에는 장기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외에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세러피를 적용해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신경계를 안정시켜 주는 세러피 중에 명상, 아로마요법, 운동 등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명상'


교수님 입에서 명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심장에서 쿵하고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내 안에 조금씩 엉겨 붙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져버린 실타래를 스르륵 풀어지게 만든 크나큰 진동이었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내가 극심하게 느꼈던 두통은 해당조직엔 이상이 없었지만 그 조직과 연결되는 신경계에서 통증에 과도하게 반응하여 실제로는 작은 통증을 뇌에서 몇 배로 크게 인식하게 되면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 것이었는데, 이것을 경감시킬 수 있는 신경계를 안정시켜 줄 수 있는 활동인 명상이 그 역할을 해준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차에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혼자만의 파티를 했다. 인생의 큰 과제를 하나 풀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울컥하는 감정도 큰 환희도 아닌 잔잔하게 꽉 채워진 기쁨이었다. 이 말씀을 들으려고 여기에 입학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집에 와서 안 마시던 맥주를 한잔 마셨다. 

'이런 날이 오긴 오는 거였어.'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지식이 이 정도 이기 때문에 내가 추정할 수 있는 범위가 요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지금 보다 많은 지식이 쌓이면 나는 또 다른 접근으로 나의 증상을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추정해 볼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에서 뿌옇던 시야가 깨끗해지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원래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발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지엽적인 지식 중 하나 일 테지만, 이것이 나에게 진정 소중한 이유는 내가 간절하게 원하고 스스로 구하며 찾아낸 나를 위한 나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이 발견은 나에게 탐구심을 한 스푼 더 추가해 주게 되었고 나는 점점 더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시작된 생활습관의학 (lifestyle medicine)이라는 학문을 공부해서 보드 자격을 취득했다. 생활습관의학은 약을 처방하거나 수술적 접근 전에 생활습관을 개선하여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생활습관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이 학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필러 중 하나인 정서적 웰빙에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 명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상은 예상치 않았던 곳으로 나를 데려가 준다. 나의 탐구심이 또 어디로 향할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작던 크던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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