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명상선생님이 되었다고요?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나의 강의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내가 직접 부딪혀 공부하고 알아낸 지식들이 쌓이면서 강의를 하는 나의 어조에 확신이 더해졌다. 다양한 근거를 더해가면서 강의를 진행했다. 내가 확신이 서니 강의에 설득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재미있는 인연으로 연결된 마음 챙김 교육 프로그램 회사의 대표님과 노들섬에서 마인드풀웬즈데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다. 클래스를 막 시작하려고 자리에 딱 앉은 그때, 대표님이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지금 아모레퍼시픽 담당자분이 참관하실 거예요"
아. 모. 레. 퍼. 시. 픽.
순간적으로 가슴이 콩콩 뛰고 눈앞이 뿌옇게 변하는 당황스러운 마음이란. 워낙 웬만한 일엔 크게 떨지 않는 성격에다가 그때 이미 나는 명상강의를 많이 할 때였으므로 강의를 하는 것 자체야 떨리거나 긴장할 일은 아니라 해도 나의 전 직장, 나의 이전의 모습이 있던 그곳의 담당자가 지금 여기에 참석을 한다는 것은 좀 다른 문제가 아닌가.
혹시 아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물었다.
"그분 이름이 뭐예요?"
다행히 모르는 이름이었다. 민망하고 오싹했던 그때 마음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강의가 끝나고 얼마 후 '마인드풀웬즈데이'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들이 아모레퍼시픽 직원 교육 프로그램으로 채택이 되었다. 내가 진행했던 클래스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인생이 이렇게나 흥미진진하다. 기업에서 강의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내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광경이라니 나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한참을 빙긋 웃고 있었다. 명상선생님으로의 인생은 늘 나에게 잠시 멈추어 음미할 수밖에 없는 감미로운 경험을 선사해 준다.
나는 참관을 왔던 담당자님에게 아모레퍼시픽에서 근무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전에 이야기를 해서 프로그램 진행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전 직장과의 친분도 인맥도 아닌 순수한 연결이 아닌가. 나는 이 재미있는 사실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갈 일이 없을 것 같던 회사에 마케터가 아닌 명상선생님으로 발을 딛게 되던 날, 그날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그 마음을 묘사하자면 마치 애니메이션 속 분홍 꽃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현실이 아닌 듯한 황홀한 느낌과 이전의 내 모습과 그간의 사연들이 한꺼번에 펼쳐지며 애잔함이 더해지고, 이런 모습으로 회사에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에 감격스러운 마음이 함께 몰려왔다.
사전에 말하지 않았기에 담당자님은 알지 못했지만 당일이 되자 나는 커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로비에서 출입증을 받아 강의장으로 이동할 때 이미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동료들이 있었고, 소식을 듣고 강의장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갑고 재미있는 마음이야 더 말해 뭐 하겠냐만은, 퇴사하고 몇 년 만에 새하얀 복장을 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 나를 보고 박장 대소하듯 빵 터지며 웃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나도 참 즐거웠다. 이날 느낀 마음은 정말 다채로웠는데 팔레트에 있는 모든 마음의 컬러가 다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 색이 섞이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색이 발하면서 하나하나의 감정들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런 마음이었다.
과거의 내가 존재하는 곳, 그곳에 현재의 내가 오게 된 것,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그 순간의 벅참을 나는 잊지 못한다.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부정되지 않던 순간, 그 모든 것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수용되던 순간이 얼마나 눈이 아리게 빛이 나던지.
'지후'라는 이름은 나의 본명이 아니다. 회사원으로 살다 나의 이름을 드러내고 명상선생님으로 활동하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나는 막 강의를 하기 시작했을 때 멋진 활동명을 쓰는 요가선생님들을 따라 '지후'라는 활동명을 만들었다. 특별히 대단한 의미를 지닌 이름은 아니지만 그 활동명이 나에게 새로운 자유를 선물해 준 것도 사실이다. 처음 활동명을 만들게 된 것은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이전과는 다른 내 모습에 아직 스스로 온전히 떳떳하지 못한 마음도 있었다는 것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날 방문한 전 직장에서 나는 본명으로도 지후로도 온전히 존재했다. 본명으로 나를 인식하는 동료들에게 '지후'로 온전히 받아들여지던 순간. 동료들과 함께 재미있어하고 기뻐하고 신기해하던 그 순간이 마치 나에게는 인생의 매우 중요한 하나의 의식을 치른 것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교차하며 온전히 세상에 받아들여진 느낌.
나의 삶은 이번에도 깊은 울림으로 인생의 이정표를 확인시켜 주며 나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아주 오래도록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무위이화
아무것도 계획하고 도모하지 않아도 인생은 이렇게 재미있게 흘러간다.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되며 이루어질 일은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