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명상선생님이 되었다고요?
그때쯤 나는 어딜 가든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대부분 편안해 보인다, 좋아 보인다 등의 두리뭉실한 이야기였지만 “얼굴에 독기가 빠졌다” “인상이 부드러워졌다”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예전처럼 바쁘고 힘들지 않으니까 라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나는 명상선생님으로 프로필 사진을 찍은 후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친구와 재미 삼아 회사 다닐 때 브랜드 홍보담당자로 한 매거진에 실렸던 사진과 명상선생님 프로필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았다. 헤어스타일과 머리길이, 사진 찍을 때 취하는 포즈도, 좋아하는 액세서리까지 비슷한 분명 "같은" 사람이 맞지만, "다른" 사람 같았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고유의 결, 에너지가 달랐다. 이전 사진에서도 분명 웃고 있지만 편안해 보이지 않고 이전 사진이 명상선생님 프로필 보다 약 5년 전에 찍은 것이었지만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몸과 마음에 그리고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일 만큼 나는 분명 변화를 겪고 있었다. 나의 변화에 대해선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나를 오랜 시간 보아온 친구, 선배, 동료들은 나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걱정과 우려를 함께 전하곤 했다.
"지금껏 그렇게 열심히 일한 거 아깝지 않아? 한창 일할 나이인데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건 어때?" "원래 하던 일이랑 관련 있는 것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건 그냥 취미정도로 해도 되잖아"
그들의 걱정하는 목소리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으며 나에게도 그들이 참으로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걱정과 우려를 전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던 사람들은 나의 가족들 특히 부모님이었다. 그때 부모님에게 비친 나의 모습이 어떘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세상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선택만 줄곧 해오던 딸이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버린 모습을 보는 마음이 어떠셨을지. 부모님은 내가 성인이 된 후에는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고 대부분 지지해 주셨고, 역시나 이번에도 나를 믿고 지켜봐 주셨다. 하지만 내가 모를 리는 없었다. 남들이 아는 회사 다니며 잘 차려입고 노트북 들고 출근하는 딸이 더 예뻐보였을 것이라는 것을. 선택을 지지해 주고 싶은 마음의 언저리에 깊은 시름이 있었을 것을 내가 절대 모를 리 없었다.
"혹시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건 아니지? "
그때 나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시선을 가장 잘 함축한 문장이 아닐까. 내가 명상선생님이 되기로 한 6-7년 전에는 이 분야에 대한 사회적인 인지가 매우 낮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안정된 삶의 트랙에 존재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연상이 가능한 삶의 트랙에 있던, 본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곳을 빠져나와 잘 이해가 안 되는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걱정을 낳기에 충분했다. 인간은 예측되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가장 큰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이니까.
'사이비 종교'
당시의 사회적 인식을 고려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의도로 나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지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 말은 나에게 깊이 남았다. 그것은 이 일의 길목에서 나에게 가장 큰 저항을 일으킨 부분과도 맞닿아 있었다. 나는 내가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분류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말에 큰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나는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했고 이것이 근거 베이스의 증명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을 설득하기에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진심 어린 걱정과 우려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 스스로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지식이 나는 간절히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