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명상선생님이 되었다고요?
나는 산을 좋아한다. 성인이 된 이후 머리가 복잡하거나 몸을 움직이고 싶을 때 가끔 동네 뒷산에 올랐다. 나지막한 산이지만 적당한 높이와 경사가 있는 뒷산이 마음에 들었다. 퇴사를 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나는 산에도 자주 오르기 시작했다.
가을이었다. 그날도 나에겐 너무 익숙하고 특별할 것 없는 뒷산에 운동삼아 오르던 길이었다. 익숙한 길에서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어느 순간 나는 한 발을 채 옮겨 놓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게 빛이 나는 가을 산의 풍경 앞에 그대로 서있었다. 붉게, 노랗게 눈부시게 펼쳐진 가을 산의 절경, 곱게 물든 단풍잎들이 잔잔한 바람결에 흩날리고, 그 사이사이에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어 유리알처럼 반짝거리고, 귓가엔 바람소리 새소리가 은은하게 속삭였다. 마치 영화에서나 묘사되는 천국의 장면이 펼쳐진 것만 같았다. 마음이 시원하게 열리고 자연이 발하는 아름다운 진동에 가슴이 벅찼다. 지고의 행복이란 것이 혹시 이런 것 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우두커니 서있고 나서야 이곳은 분명 오랫동안 내가 올라 다니던 그 산이 맞다는 것을, 이 산의 가을 풍경이 온몸과 마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지 않았다. 황금연휴가 다가오면 일단 티켓부터 끊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흐려져갔다. 회사 다닐 땐 휴가만 생기면 멀리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고생한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다.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나라 저나라 부지런히 다니곤 했다. 그래야만 잘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쉬는 것도 열심히 쉬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날 동네 뒷산의 풍경은 내가 지금껏 다닌 어떤 여행지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벅찬 감정을 그리고 최고의 휴식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나는 더 이상 지중해 바닷가에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여기 이곳으로 나는 이미 충분했다.
나는 일상의 당연한 일부분으로 스쳐 지나가 던 것들이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엄마가 해주시는 밥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 '엄마 정도면 좋은 팔자지'라고 생각하며 은연중에 엄마의 사랑과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회사생활이 얼마나 바쁘고 힘든 것인지 엄마가 이해할 수 있겠냐며 걱정스레 건넨 엄마의 한마디를 대충 흘려듣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여러 나라로 여행을 많이 다닌 엄마가 항상 바쁜 아빠와 함께 해외여행 가는 것이 소원이라 했을 때 나는 그것을 그저 그런 투정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엄마의 외로움을 보지 못했다. 엄마는 원래 밝고 활기찬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숨 들이마실 때 사랑합니다, 내쉴 때 감사합니다 라고 계속 되뇐다." 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모든 것이 노력과 희생의 결과였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의 가족들에게 마음을 내기 시작했다. 용돈을 드리고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닌, 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생활을 관찰하고, 곁에 존재하며, 필요할 때 손을 내어드리면서.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이런 댓글을 남겼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나는 태어난 후 지금껏 줄곧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진정으로 가족과 함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