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운전하기
나는 정말 오랜 시간동안 장롱면허였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면허를 취득할 때만 해도 면허 학원에 등록해서 알려주는 요령과 법칙들을 잘 외우기만 하면 쉽게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하기 전 비는 기간에 서둘러 면허를 취득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암기 과목 외우듯이 면허를 취득한 후, 처음 나서는 도로 주행은 혼돈 그 자체였다. 몇 번 엄마차를 몰아 동네를 다니며, 동생들을 태워다줬는데, 가족 모두 내가 운전하는 차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며 탑승을 거부했고, 엄마도 도로주행 연수를 받은 이후에 운전을 하라며, 더이상 차키를 건네주지 않았다. 운전에 대한 용기(?)가 그냥 제풀에 꺾였다.
그 후 거의 10년동안은 운전대를 잡지 않았고, 잡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워낙 복잡하고 밀리는 서울의 도로교통 환경보다, 촘촘하고 정확한 지하철을 더 많이 이용했다. 술자리 약속에 주차나 대리운전 걱정을 하는 것보다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서울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차와 운전은 필수요소가 아니었다. 마켓컬리나 쿠팡 로켓배송도 차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하는데 한몫했다. 무거운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갈 필요 없이 클릭 한 번이면 배달기사님들께서 수고스럽게도 집 앞까지 물건을 잘 배달해 주셨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내 행동반경이 서울 안에서만 한정되어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차를 사고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직장에 자리잡고 6~7년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한참 인생이 무료하다고 느껴, 바닷가에서 서핑하는 것에만 빠져있을 시기였다. 동해, 서해, 남해, 제주를 가리지 않고 전국 팔도를 누비던 시절이었다. 내 장비를 싣고, 내가 원하는 지역에 가기 위해서는 차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고차를 살까 이래저래 알아보았다. 당시 여러 경제적인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어째저째 가용하면 비용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돈보다 내 안의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오랫동안 묵혀놓은 장롱면허로 인해, 과연 나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있을까, 괜히 사고나는 것 아닐까, 차를 긁히거나, 남의 차를 박거나, 심지어 인명사고를 내면 어떻게하나 라는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차를 타는 대신 나는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타거나,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취미생활을 지속했다. 친구의 차를 얻어타기도 하고, 동호인들끼리의 카풀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함께해주는 친구들이나 지인이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의지와 욕망이 억압되는 듯한 느낌도 함께 받았다. 차가 있는 친구들은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본인이 원하는 장소로, 본인의 물건들을 늘 싣고, 본인의 집에서 바로, 본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고 싶을 때 차편을 구하면 가지 못했고, 운전자의 일정에 항상 맞췄고, 나는 그들에게 늘 부탁해야하는 입장이었다. 그 때 '이동의 자유'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어딘가 가고 싶을 때, 내 의지대로만 갈 수 있는 자유.
운전에 대한 두려움은 면허는 있지만 운전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결국 이 두려움을 없애려면 운전을 많이 해봐야했다. 하지만 장롱면허에겐 운전대를 잡을 기회가 없었으니, 이 두려움 또한 떨칠 기회도 없었다. 다행히 남편 덕에 나는 운전할 기회를 조금씩 갖게 되었다. 결혼 전 남편은 내게 운전 연습을 아주 호되게 시켰다. 해외에 나가면 운전해야할 일이 많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미리미리 연습해야한다는 요지였다. 평소에는 별 말이 없는 사람이 운전대 앞에서는 너무나도 엄했다. 사실 그도 내가 보기엔 딱히 올바른 운전습관을 지니고 있지는 않아보이는데(!!!), 본인의 방식대로 운전하지 않으면, 그렇게 내게 쓴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운전연습을 하다가 서로 싸우기도 하고, 가끔 서러워 울기도 하고, 이러다 결혼 못하는 줄(?) 알았다. (왜 부부끼리 운전 연수하면 안되는지 아주 절절히 실감했다.) 그래도 덕분에 주행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데, 주차가 영 늘지 않아, 시댁 근처 공터에서 주차만 4시간을 연습한 적도 있었다. 이런 특훈 덕분일까, 그래도 그나마 독일 오기 전에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떨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독일에 대한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자동차와 '아우토반(Autobahn)'일 것이다. 특히 속도 제한 없이 달릴 수 있는 아우토반에 대해, 운전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우토반은 직역하면 자동차 (전용) 도로라는 뜻으로, 특정 지역, 특정 구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독일 전역의 고속도로를 의미한다. 전국 모든 고속도로가 무료인 독일에서는, 한국에서처럼 고속도로와 일반 도로를 나누는 톨게이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자동차 전용 도로 표시판이 나타나면, 이를 기점으로 고속도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들은 대로 아우토반에서는 속도 제한이 딱히 없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시속 80~130km 정도의 속도 제한 구간을 두기도 하고, 이 구간에는 한국처럼 감시카메라도 있다. 최근에는 공사 구간까지 많아져서, 이전처럼 무제한으로 속력을 낼 수 있는 구간이 적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제 막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친 내게 아우토반은 또다른 난관처럼 느껴졌다. 빠르게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느리게 주행하는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두려웠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혼자 고속도로를 운전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내가 두려운 것은 이런 아우토반의 스피드에 익숙한 독일인들의 운전습관이 난폭하면 어떻게 할까, 라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는 완전 오해였다. 한국에서보다 독일에서 운전하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하고, 쉬웠다. 내가 사는 곳은 작은 도시라 서울처럼 붐비지 않는 환경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도로가 한산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함께 있어, 운전시 자전거를 늘 유의해야하며, 비보호 좌회전이 많아, 좌회전 시 늘 신경을 써야한다. 큰 도로보다는 골목이 많고, 골목에는 늘 거주자 주차가 되어있어 도로가 좁다. 시내에 차를 끌고 나가면, 주차 공간은 어느정도 확보되지만 출입구가 너무 좁아 이미 여러 사람이 범퍼를 긁어놓은 흔적들을 보았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독일에서 운전하는 것이 더 편한 것은 바로 도로규칙을 정확하게 지킨다는 것과 서로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비보호 좌회전인 것은 다들 도로 교통 수칙을 정확하게 지키기 때문이었다. 직진 차량을 먼저 보내려고 오래 기다리고 있으면, 먼저 가라고 상향등을 깜빡이며 양보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떨쳤으며, 근처 마트까지 혼자 운전하거나, 남편의 직장 출퇴근 픽업도 종종 해주게 되었다.
고속도로 운전도 크게 문제 없었다. 독일에서는 추월차선, 주행차선, 화물차선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추월차선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거나, 정체가 심해 늘 차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반대로 독일에서의 추월차선은 늘 텅텅 비어져있는 채로, 오롯이 추월을 위해서만 쓰여졌다. 차들이 대체로 빠르게 달린다는 사실은 맞았다. 남편은 아우토반에서 200km 시속이 넘는 속도를 즐기기도 했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130km 이상만 밟아도 너무 빠른 것 같아 속도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나와 달리 주위 차들은 더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독일 운전자들은 추월차선을 이용해 나를 가볍게 추월해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나도 차도가 넉넉한 경우에는 비교적 서행하는 차선을 이용해 같은 속력을 유지하면서 달렸다.
나는 시속에 제한이 없다고 해서, 규칙이 쉽게 안 지켜질 수 있다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시속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규칙들을 더 철저히 지켜졌다. 그래서 빠르게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의 고속도로 주행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떨칠 수 있게 되었다. 한번은 독일 남부 자동차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장장 8시간이 넘는 장거리 운전이었지만 남편과 교대하지 않고 내가 전 구간을 운전하기도 했다. 중간에 피곤할테니 바꾸자는 남편의 제안을 거절한 건 오히려 내 쪽이었는데, 800km 가 넘는 구간을 혼자서, 아무 이상 없이 운전했다라는 기록을 스스로에게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조금의 자신감이 붙어 혼자 운전하는 횟수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방문하였을 때, 혼자서 고속도로를 주행하며 이 곳 저 곳 함께 관광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것이 바로 '이동의 자유'인가, 생각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남편에게 운전해달라거나, 데려다 달라는 부탁 없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과 함께 갈 수 있었다.
사실 다른 나라에 비해 독일은 차 없이 생활하기에 그리 불편한 곳은 아니다.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뮌헨 같은 대도시야 워낙 대중교통이 잘 발달 되어있고, 몇몇 도시들은 환경을 위해 오히려 자동차 이용을 제한하는 곳들도 있다. 생활반경 내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내가 사는 곳도 대도시는 아니지만, 버스나 기차, 지하철 수단이 나름 잘 되어있어 왠만해서는 차 없이 원하는 곳을 갈 수가 있다. 한국에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장롱면허라도 애기를 낳으면 무조건 운전해야한다, 어쩔 수 없이 운전을 배우게 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타는 것이 워낙 흔한 일이라 애기를 낳아도 운전을 해야만 하는 것이 꼭 필수요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차가 아예 없는 것은 조금 불편할 수 있다. 독일 여행은 대도시 위주의 여행이 아니라, 작은 소도시를 찾아가는 여행이 매력이기 때문에 기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프랑크푸르트를 기점으로 한 독일 남부 자동차 여행은 아주 추천하는 바이다. 식료품 배달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용량 구매시에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시내에 있는 아시아마트에서 김치와 떡만 사도 가방이 쉽게 무거워지는데, 차로 올 걸 그랬다 싶은 날들도 있었다. 잦은 대중교통 파업, 긴 배차기간, 기차 연착 같은 이슈를 생각하면 오롯이 대중교통만으로 생활을 영위하기엔 약간의 불편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대중교통이 파업하여 시내 어학원에 가기가 아주 불편했던 날이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운전해서 시내까지 가겠다고 얘기했다가 제지 당했다. 한참 운전 자신감이 붙었던 날, 혼자 시내에 나갔다가 좁은 주차 출입구에 문짝이 약간 찌그러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낸 범퍼 자국이 있던 곳에 남편 차의 흔적도 함께 남기고 왔다.) 그 이후로 남편은 시내 좁은 주차장을 혼자 이용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나의 전적이 있으니 나도 이번엔 잘 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파업이 있는 날에는 그냥 집에 있어, 나가지 말고' 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말에 너무나도 속이 상했다. 독일에서 조금씩 운전을 배워가면서 나의 '이동의 자유'를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집에만 머물라는 남편의 말이 차를 못 쓰겠다는 허락을 넘어서 나의 이동의 자유까지도 침해하는 발언이라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30분 걷고, 30분 자전거를 타는 방법으로 꾸역꾸역 시내까지 다녀왔다. 그냥 집에만 머무는 것은 주재원 와이프로서의 나의 한계와 무언가의 종속된 느낌을 인정하는 꼴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나서 며칠뒤, 마트에 가기 위해 혼자 운전하는 날 20분 정도의 짧은 운전이었지만, 무언가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 차 안에서의 혼자만의 시간, 내가 듣고 싶은 음악, 무거운 것을 들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어깨, 내가 원하는 곳에 내 의지대로 갈 수 있는 자유. 물론 마트를 왕복하는 20분 간의 짧은 감각이었지만, 이는 내게 운전하는 재미를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고민이 있을 때 드라이브를 떠난다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아직은 마트만 왕복하는 초보 운전자이지만, 점점 더 내 운전 가동범위가 넓어질 수 있기를, 내 차를 구매할 수 있게 되기를,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되기를, 무엇보다도 무사고 안전 운전을 늘 할 수 있기를 그렇게 바래보며, 독일에서 여전히 운전을 연마 중이다.
안녕하세요 :)
보통 월요일 이른 아침에 업로드를 하는데, 오늘은 업로드가 많이 늦었습니다. 최근 몇 주간 지속되는 허리통증으로 인해, 앉아서 글 쓰는데 집중하기가 너무 어려웠네요 ㅠㅠ 혹시나 업로드를 기다리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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