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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이면 어떠한가

독일 소도시 여행하기

by 럭키젤리 Mar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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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노잼 국가로 이미지가 박혀버린 독일에서 어떻게든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보고자 노력하며, 그간 몇 편의 글을 써왔다. 이 연재를 기획할 때 즈음, 기자로 활동하는 친구와 오랜만에 연락을 나눈 적이 있다. 출산을 목전에 앞두고, 의미있는 상까지 수상한터라 여러모로 겹경사를 맞이한 그녀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기 위해서였다. 카톡을 보내기 전, 그냥 궁금한 마음에 그녀가 그간 작성한 기사들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그녀는 이미 작년 여름에 "노잼도시"를 주제로 여러 기획기사를 작성하며, 한국의 여러 지방 소도시 활성화의 해법을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독일에 비해서 한국은 아주 재미있는 것들이 많고, 다이나믹하고, 유흥이 넘치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한국=서울'이라고 여긴 나의 짧은 생각에서 비롯했던 것 같았다. 한국의 소도시들이 노잼이라 불리며, 많은 젊은이들이 찾지 않고 활력을 잃어가게되는 현상은 요즘 갑자기 대두된 문제는 아닌데 말이다. 


기사에서는 살기 편리한 곳과 재미있는 곳을 구분한다. 서울은 가히 한국의 모든 인프라가 집중된 곳이기 때문에 살기 편리하면서, 동시에 그만큼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해, 그들의 다양한 개성들이 모여 재미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창조된다. 많은 지방도시들도 서울만큼이나 살기 편리한 곳들도 많다. 오히려 인구밀도가 낮아서, 살기 좀더 쾌적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재미를 조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서울을 벤치마킹한다. 무엇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개성도 아니고, 특징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지적하며, 살기 편한 '노잼'도시들은 서울의 개성을 그대로 쫒아가려고 하기 보다는, 지역색에 더 집중하여, 그 지역만의 특징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재미를 만들어나가야한다고 조언했다. 


독일에는 뉴욕, 런던처럼 엄청난 규모의 메트로폴리스도 없고, 파리의 에펠탑과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대표적인 관광랜드마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럽여행을 할 때 슬쩍 찍고가는 중간 기착지로만 여기고, 짧게 머문다. 그나마 베를린 정도가 서울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과 비교하면 독일 어느 도시든 불편하지만) 지방 소도시에 비하면 편리하고, 세계 '힙스터'들이 모이는 곳으로, 다양한 개성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사실 나는 아직 베를린에 대한 로망이 조금 남아있는 편이라, 베를린에 살았다면 독일 생활이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곤한다. 하지만 틈틈이 독일 소도시 여행을 다니면서, 작은 도시들을 속속들이 탐방해가며 독일 여행의 매력을 알아가고 있다무엇보다도 독일의 소도시들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한 "최대한의 지역색을 살리라"는 꿀잼 공식을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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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의 쾰쉬와 뒤셀도르프의 알트비어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는 지역마다 다 다른 스타일의 맥주를 마시고, 자기 지역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 쾰른의 맥주인 쾰쉬와 그곳에서 불과 30분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뒤셀도르프의 맥주인 알트비어는 서로 라이벌 관계일 만큼, 각자 지역색의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코헴에서는 훌륭한 리즐링을 즐길 수 있고, 뷔르츠부르크에서는 실바너 품종의 화이트와인을 즐길 수 있다. 서쪽 루르지대에서는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 되었던, 과거 많은 파독 근로자들이 일했던 공업지대를 살펴볼 수 있고, 반면에 남쪽 알프스지대에서는 엄청난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힐링할 수도 있다. 대성당은 대성당마다 느낌이 달랐고, 대학도시는 대학도시마다, 성(城)은 성마다, 온천은 온천마다 느낌이 달랐다. 이렇게 독일의 소도시들은 도시마다 이렇게 본인의 개성과 특색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데, 그렇다면 "꿀잼도시"라고 부르며, 노잼 독일의 오명을 조금 벗겨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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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 공업지대의 대표 도시인 에센과 알프스산의 경치를 감상할수 있는 베르히테스가덴


이쯤에서 솔직히 고백해야할 것이 있다. 노잼에서 소소한 유잼거리를 찾아 소개해보겠다는 큰(?) 포부는 어디가고, 연재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독일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완결하는 것이 어떤 날은 너무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럴 때면, 독일은 진짜 핵노잼 맞는데, 내가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억지로라도 재미있다고 정신승리해보려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기사 속 전문가의 말 속에서 그 답을 찾게 되었다. "재미의 반대는 예측가능한 편리함" 이라는 것이다. "재미는 의외성, 우연성, 오감의 자극"에서 오기 때문에, 편리하고 안정적인 상태에서는 오히려 찾기 힘들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아, 나 독일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버린 것이구나. 


독일에 처음 왔을 때는 정말 글감이 넘쳐났다.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거리에도 막 영감이 떠올라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하고, 혹시나 생각이 휘발될까봐 달리는 기차에서 글을 쓴 적도 있다. 독일 사회가, 해외 생활이 처음인 내게 모든 것은 예측 불가였다. 즉, 의외성, 우연성의 향연이었다. 그래서 그 때는 '택배 배송이 불편한 일'도,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쉽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도, '영화를 보는 일'까지도, 이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나도 그런 사소한 일들에서 재미를 느끼지 않고, 글감도 잘 연결되지 않는다. 고작 1년 넘게 살았을 뿐인데, 이 생활도 나에게 예측가능하고 익숙해져버렸다. 


안정되었다고 해서, 삶이 조금 재미없게 흘러간다고 해서 지금 내 삶이 불만족스러운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니다. 조금은 무료하고 심심하기는 해도, 그 어느 때보다 내 삶은 마음 편안하게 흘러가고 있다. "살기 좋은 도시, 꼭 재미있어야하나?"라는 기사 제목처럼, 지금 내 삶에 도파민 격한 재미가 꼭 필요한 것인가 생각해보면 또 그건 아니다. 서울에서 힘들고 빡빡했던 일과,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도파민 터지는 무언가가 필요한 시기가 있었다. 반대로 독일에서는 안정적이고, 느리게, 그래서 다소 재미없게 흘러가지만 내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면서 미래를 도모하는 시기로 삼고 있다. 이 노잼 시기를 충분히 보내고, 엄청난 도파민과 재미가 필요하게 될 때 나에겐 다행히도 한국에 돌아가 복직해도 된다는 옵션도 있다. 그래서, 독일이 핵노잼이면 어떠한가. 그래도 이곳에서의 삶이 그 나름대로 살만한, 소소한 재미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혹시나 관심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언급한 기사링크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독일 소도시 여행이 궁금하시다면, 블로그에 자세한 여행 후기를 공유하였으니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blog.naver.com/theluckiestgirl_


이번 연재를 끝으로 당분간 정기 연재를 휴재하려고 합니다. 목표하는 공부에 조금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대신 글감이 확 떠오를 때는, 랜덤하게 매거진에 글을 올릴 예정이니 혹시라도 앞으로의 소식 + 글이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 해주시면 가끔 받는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찾아봽도록 하겠습니다. 늘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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