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이색 음식 체험하기
독일에 살면서 날씨만큼이나 힘든 것이 바로 음식이다. 독일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식문화가 너무 발달하지 않았다보니, 딱히 뭘 맛있게 먹을만한게 없다는 것이 문제다. 독일의 대표 음식을 누군가에게 물어본다면, 다들 "맥주"를 우선적으로 답할 뿐, 어떤 "식사"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독일에 산지 1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나에게도 독일음식은 맥주, 돼지고기(소시지 포함), 감자만 생각날 뿐, 그 외 특색있게 먹어본 것이 없다.
독일의 이웃 나라인 프랑스나 이태리만 해도, 수많은 요리들과 와인들을 즐기느라 식사 시간이 몇 시간씩 걸리며, 그들은 자국의 음식 문화에 상당한 프라이드까지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독일인들은 먹는데에 크게 진심인 것 같아보이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은 차가운 식사라고 부르며, 간단하게 빵과 햄, 치즈로만 해결하고, 점심 한끼정도만 따뜻한 식사를 먹는데, 주로 피자, 파스타를 먹는 것을 보면, 그들도 "독일음식"을 잘 먹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에 오자마자 맛본 관광객용 독일음식들은 처음에는 다 맛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어느 독일식 레스토랑을 가도 감자, 돼지고기, 맥주가 위주다 보니, 금방 물리고 질리게 되었다. 점점 집에서 한식 위주로 직접 해먹는 날들이 늘어났다. 외식에 대한 기대가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물론 높은 외식물가 때문도 있었다. 비용 대비 만족감이 너무 낮았다.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에는 그래도 이것저것 새로운 식당들도 많이 생기는 것 같던데, 소도시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사실 나는 먹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한끼 한끼 대충 먹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미식가인 남편에게는 '먹는 재미'라는 인생의 낙 중 하나를 잃은 것과도 같았다. 과연 노잼 독일에서는 먹는 것마저도 재미가 없었다. 나와 남편은 회와 초밥을 그리워하며, 한국에 가면 먹을 것들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독일과 비교하면, 한국만큼 먹거리와 식문화가 발달된 나라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럴까, 독일에는 다양한 이민자들의 음식이 발달되어있다. 우리 부부가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며, 한식을 해먹고, 위시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 타지에 머물면서 고향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독일음식에 정을 못붙이는 사람이 어디 나뿐만이었으랴. 예전에 한 직장 동료가 영국에 가면, 꼭 인도 커리를 맛봐야한다고, 영국만큼 인도커리가 맛있는 곳이 없다고 강조했던 것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특히 베를린에서 꼭 먹어봐야하는 음식은 바로 케밥이다. 그런데 그냥 터키 케밥이 아니다. "되너 케밥"을 꼭 먹어보아야한다. 되너 케밥은 터키 이민자들의 음식인 '케밥'과 독일인들의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는' 식사 습관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음식으로, 본래 접시에 서빙되어 직접 빵에 싸 먹는 터키식 케밥(사진상 오른쪽)과는 달리, 마치 햄버거처럼 빵에 쌓여져서 나와 길거리 음식으로 먹는 것이 베를린 되너 케밥의 특징이다(사진상 왼쪽과 가운데).
독일인들에게 되너 케밥은 이민자들의 음식이 아닌, 그들의 소울푸드인 것처럼도 보인다. 독일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는 젊은 시절부터 일주일에 한번 이상 되너 케밥을 먹었다고 하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독일 전직 축구 국가대표 루카스 포돌스키는 은퇴 후 되너 케밥 프랜차이즈를 차리기도 했으니, 독일인들의 되너 케밥 사랑은 성별 불문, 연령 불문인 것 같다. 되너 케밥의 원조를 두고 아직까지도 터키가 원조냐, 베를린이 원조냐 논란이 있다고 할 정도라고 하며, 독일에서 사는 터키인들을 주축으로 한 '되너 케밥 협회'의 입김은 꽤나 강한 편(?) 이라고 하니, 독일에서의 되너 케밥의 위상은 많은 이민자들로 구성된 독일 사회의 단면을 대신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독일 사람들에게도 독일 음식이 재미 없어서 그럴까. 독일인들도 외식할 때에는 자국의 음식보다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체험하고, 새로운 맛을 경험해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보인다. 나의 에티오피아 친구 M의 가족이 운영하는 에티오피아 음식점에 방문했었을 때였다. 한식 뿐만이 아니라 다양하면서도 높은 퀄리티의 외국 음식 또한 즐길 수 있는 한국에서조차 아프리카 음식은 흔히 먹어볼 수 없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식당은 독일 대도시에서도 꽤나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식당으로, 독일인들이 종종 찾는 음식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한번도 아프리카 음식, 특히 에티오피아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 생소한 마음에 기대반 걱정반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식당은 넓었고, 피크타임이 되자, 독일인들로 식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에티오피아 식당이니, 당연히 고향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이 부분이 놀라워, 같이 음식을 먹던 친구에게 말하니, 그는 조금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독일인들은 자신 스스로 인종차별자로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로라도 다양한 나라, 특히 이민자들의 음식을 경험하려고 하며, 그러한 음식을 '잘 먹는 척', '좋아하는 척'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일단 나는 모든 아프리카의 음식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같이 식사를 한 케냐, 가나에서 온 친구들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했다. 한,중,일의 음식 특히 한식과 일식을 같게 취급하는 서양인들의 반응에는 분개하는 내가 정작 아프리카 음식은 다 같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차별적인 면모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었다. 또, 이 곳에서는 현지에서 먹는 방식인 손으로 먹는 것을 먼저 제안한 후, 스푼과 포크를 제공해주었다. 사실 나는 물컹한 식감의 소스와 얇은 전병 빵을 손으로 먹을 자신이 없어, 수저가 있으면 좋겠다고 요청하려던 차였다. 하지만 식당에서는 그 누구도 포크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손으로 먹는 것을 불편해하며 식사도구를 요청하는 행위가 혹시라도 차별적인 행위로 보여지지 않을까 급히 걱정이 되었다. 사실 모르는 곳이었으면 포크를 달라고 당당하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괜히 친구네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더더욱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손으로 식사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무언가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꽤나 입맛에 맞았던 식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나는 체해버리고 말았다.
독일 내에서 터키, 아프리카 이민자 못지 않게, 한국인 이민자들의 역사도 그에 못지 않다. 그래서 어느 도시든 한식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나 한류열풍을 함께 K-Food의 인기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시내에 아시아 마트에 가면, 아시아인들보다 젊은 독일인들이(대부분 학생들) 훨씬 더 많고, 대도시에서는 '힙'하고 젊은 분위기의 한식당은 점점더 많아지는 추세이다. 밥하는 것이 지쳐, 남이 해준 밥을 먹으러 종종 한식당을 방문할 때면, 한국에서 먹던 맛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고, 한국인보다 현지인들이 훨씬 더 많이 있다는 사실에 두번 놀라게 된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맛과 동일하게 구현하는 한식당이 있는가하면, 한국과 독일의 정체성을 동시에 녹여내는 퓨전 레스토랑도 있다. 미슐랭 원스타를 받기도 한, 뒤셀도르프의 한 한식 퓨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 곳의 셰프는 어머님이 파독 간호사로 근무하신 분이시며, 아버님은 독일인으로 한독 교포 2세였다. 뒤셀도르프는 워낙 오래 전부터 일본 이민자들이 자리잡은 곳이라, 그 또한 이 곳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셰프에게서 사사 받고, 여러 일식당에서 일해왔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정체성 중에는 하나는 '한국인'인데, 한식적인 특징이 배제된 요리를 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일식당을 나와 한식과 프렌치를 접목한 식당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한식과 서양식의 조합은 한국의 많은 레스토랑에서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온 요리들 모두다 나의 예상과 벗어나는 것들이었다. 한식의 재료들을 한국인이라면 전혀하지 않을 것 같은 방법으로 응용했는데, 도저히 나의 상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두유와 된장을 섞기도 하며, 쌈장으로 국물 소스를 만들기도 하고, 김치는 양배추를 얇게 채썰어 액젓으로만 간을 하기도 하였다. 된장, 고추장, 간장, 액젓 모두 한식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재료들인데, 이를 한국인들이 전혀 쓰지 않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참 독특했다. 이러한 창의력과 상상력은 정형화된 한식을 오랫동안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교포 2세라는 독특한 정체성 덕분에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흑백요리사에서 에드워드리가 보여줬던 독특함과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신선한 메뉴들에 놀라워하며 식사를 이어나가는 중, 나를 제일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함께 페어링 된 칵테일이었다. 논알콜 페어링 음료로 나온 음료 모두 조합이 신선했지만, 이 음료를 마셔보고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맛에 눈이 확 뜨였다. 옥수수 수염차에 간장을 한두방울 섞은 맛이었다. 맛을 떠나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한국사람이라면 페어링 음료로 이 조합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신기하기까지 했다. (물론 개인적으론 그냥 옥수수 수염차가 더 좋긴 하며, 음식은 전반적으로 좀 짠편이었다. 하지만 이는 독일 현지인들 입맛에 맞춘 것이라 생각된다.)
참신한 메뉴 개발만큼이나, 그는 한식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꽤나 가득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에서 "한우"를 공수할 수 없다는 것을 제일 안타까워했다. 일본의 "와규"는 잘 브랜딩되어서, 독일 마트에서도 와규 패티를 팔고, 마치 '스시'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육류 브랜드가 되었다. 하지만 독일 어디에서도 "한우" 품종을 찾아 볼 수는 없다. 셰프는 자존심상(?) 와규를 쓸수도 없고, 그렇다고 독일산,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산은 마블링이 너무 없어서 요리에 쓸수 없어서, 어쩔수 없이 미국산 소고기를 메인 요리에 쓴다고 했다. K-Food 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는데, 식재료의 브랜딩 또한 한식의 세계화의 중요한 과제임을 셰프님과 늦도록 대화를 이어나갔다.
독일에서 외식을 하려 시내의 식당들을 살펴보게 되면, 작은 이태원 같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한국에서는 이태원에 가야, 평소에 접하지 못한 다양한 세계 음식을 먹어볼 수 있다면, 독일에서는 그냥 외식을 하려거든 다양한 이민자들의 음식이 후보지에 오른다. 친구를 통해서 이미 처음으로 이란 음식을 맛보았고, 조만간 레바논 음식을 도전해볼 생각이다. 독일 음식이 재미 없기 때문에, 독일이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독일 사람들이 최대한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려고(의도가 어쨌든) 노력하기 때문에 오히려 독일에서의 음식 문화는 더 다양해지고, 이색 음식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 싶다. 독일에서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면, 학센과 감자 맥주 같은 독일 '관광객용' 음식만 드셔보시지 마시고, 다양한 세계음식 또한 드셔보시기를, 그래서 또다른 여행의 재미를 느껴보시기를 추천한다.